[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67) 최인훈 '광장'

입력 2017-06-19 09:01
6·25전쟁 속에서 남과 북을 경험하는 주인공 명준
포로가 된 명준은 휴전이후 중립국을 선택하는데…
소설이 나온지 57년지금 상황이라면 명준은 어디로 갈까


남북 이데올로기 동시 비판

6·25전쟁 67주년이 다가왔다. 1950년 6월25일에 발발해 1953년 7월27일에 휴전한 상태일 뿐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6·25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이 무수히 많은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지고 많은 논쟁을 낳았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작품은 바로 《광장》이다.

《광장》의 주인공 명준은 남에서 북으로 가지만 작가 최인훈은 북에서 남으로 왔다.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원산고등학교 1학년 때 6·25전쟁을 겪었다. 그해 12월 해군함정 LST 편으로 전 가족이 월남하였다.

그의 나이 24세이던 1960년 《광장》을 발표했는데 이 소설이 주목받은 이유는 과연 뭘까. 이전에 나온 6·25전쟁 소설과 다르게 ‘남북한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하는 가운데 주인공이 남북을 오가는 절묘하면서도 파격적인 스토리 속에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명준이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향하는 배 안에서 회상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철학과 3학년인 이명준은 친구 태식의 집에서 지낸다. 아버지는 8·15 광복 때 월북했고 얼마 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아버지 친구였던 은행가의 집에 살게 된 것이다. 명준은 사람에게 밀실과 광장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명준에게 밀실도 그리 안온하진 않지만 광장은 불만 그 자체이다. ‘정치는 추악한 밤의 광장이자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경제는 사기의 안개 속에 협박의 꽃불이 터지고 허영의 애드벌룬이 떠도는 광장, 문화는 헛소리의 꽃이 만발하는 광장’일 뿐이다.

어느 날 명준은 느닷없이 형사에게 끌려간다. 북으로 간 아버지가 대남방송에 나오자 형사는 명준에게 “애비 소식 자주 듣나? 애비가 열렬한 빨갱이니까 어렸을 때부터 공산주의 영향을 받았을 거 아니냐”며 폭력을 휘두른다. 몇 차례 끌려간 명준은 인천에 있는 윤애의 집으로 피신하고 식당 주인으로부터 북으로 가는 배편을 소개받는다. 사랑하는 윤애를 두고 가는 건 마음 아프지만 남쪽에는 더 이상 자신이 머물 밀실이 없다.

이명준은 북에서 노동신문 기자로 일하게 된다. 고위 당원인 아버지의 입김으로 좋은 조건에서 살지만 곧 회의를 느낀다. “제가 주인공이 아니고 당이 주인공이란 걸, 당만이 흥분하고 도취합니다. 우리는 복창만 하라는 겁니다. 당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한숨지을 테니, 너희는 복창만 하라는 겁니다”라며 일방적인 북 체제를 비판하지만 아버지는 말이 없다. 국립극장 소속 발레리나 은혜와의 사랑만이 명준에게 유일한 위안이다.



발표 때와 달라지지 않은 현실

명준이 북쪽으로 간 시기는 1947년쯤으로 짐작된다. 소설 속에서 남북한을 비판하는 내용이 지금 상황에 대입해 봐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랍다.

6·25전쟁이 터지자 서울에 온 명준은 점령군이 되어 윤애와 결혼한 태식을 괴롭힌다. 하지만 태식과 윤애를 풀어준 명준은 낙동강 전투에서 간호사병으로 입대한 은혜와 재회한다. 결국 은혜는 전사하고 명준은 포로가 된다.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명준은 중립국을 선택한다. 남쪽도 북쪽도 갈 수 없는 명준은 과연 새 출발할 수 있을까? 번민과 환각에 시달리던 명준의 마지막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1960년에 발표된 《광장》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4·19혁명이 아니었다면 나오기 힘들었을 이 작품은 전후문학을 마감하고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명준은 중립국이 아니라 남쪽을 선택할까? 휴전 64년, 남북은 더 강경하게 대치 중이고 남쪽 내에서도 이념 대립이 심각하다. 남쪽은 여전히 부패로 멍들어가고, 북쪽은 더욱더 얼어붙었다.

명준이 통일된 자유대한민국의 안온한 밀실에서 살아갈 토대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쫓아가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비치는 단단함 속에 젖어가면서 살 수 있는 삶, 가슴 뿌듯하면서 머릿속이 환해질, 도끼 자루 안 썩는 신선놀음 같은 삶’이 명준이 닿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