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기질을 알아본 아버지가 대학 안 보내
목재 사업 시작…건설·차 부품·석유화학 진출
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om >
재계 순위 18위인 대림그룹은 부림상회라는 목재소에서 출발했다. 일본 건설업자들이 광복과 함께 떠나자 건설 사업에 기회가 있다고 보고 창업주는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서울 D타워의 D는?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뒤편으로 특이하게 생긴 빌딩이 하나 생겼다. 서로 다른 색깔의 블록을 쌓아 만든 듯한 모양! 이 재미있는 빌딩의 이름은 광화문 D-타워다. D는 Daelim의 첫자에서 따왔다. 대림그룹이 지었기 때문이다. 대림은 건설업으로 성공한 기업이다. 원래 대림그룹 사옥은 근처 미국 대사관 뒤편의 허름해 보이는 건물이었는데 초현대식 건물을 지어서 이사했다.
대림의 창업자는 이재준이라는 사람이다. 1917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 정미소를 하던 부친이 둘째 아들인 재준의 사업가 기질을 알아보고는 대학도 안 보낸 채 밑에 두고 사업을 배우게 했다. 청년 이재준의 첫 사업은 1939년 부평에 차린 목재소 부림상회였다. 사촌형과 같이 시작했는데 풍림산업으로 분가해 나가고 부림상회는 이재준이 독자 경영을 하게 된다.
이재준의 사업은 번창했다. 서울을 놔두고 부평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인천에 공업단지가 들어설 것을 내다봤기 때문이었다. 그 예상은 들어맞았고 부림상회를 찾는 손님이 많았다. 그냥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기보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먼저 물어서 맞춰주다 보니 더욱 손님이 많이 들었다. 수금할 때도 머리를 썼다. 외상값을 받으러 낮에 찾아가면 사람을 만나기 어려우니까 새벽에 찾아다녔다. 이 덕분에 외상값을 떼이는 일이 그만큼 줄었고 가게 형편도 좋았다.
태국 고속도로 공사 수주
광복 후 2년째인 1947년 이재준은 건설업을 시작했다. 일본인 건설업자들이 떠난 상태라 건설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귀했다. 부림상회에서 목재를 사가는 사람들이 주로 건설업자였던 덕분에 이재준은 곁눈질이나마 건설업에 대해 감을 잡고 있었다. 첫 일감인 부평경찰서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다른 공사들이 계속 뒤를 이었다.
주한미군 공사를 했고 전쟁 중에는 피란민 천막촌 공사를 맡아서 하기도 했다. 이재준의 대림은 청계천과도 인연이 깊다. 지금은 청계천이 도시 하천으로 변했지만 원래는 그 자리에 청계고가도로가 있었다. 만들 당시에는 거창하고 초현대적인 교통시설이었다. 그 청계천 복개공사를 맡아서 했던 기업이 대림이다. 대림은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그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도시하천으로 복원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 소양강댐 공사 등 국내의 굵직한 공사들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이재준은 남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본인이 살아있었더라면 자신에 대한 이런 글이 신문에 실리는 것조차 싫어했을 듯하다. 하지만 사업에서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대다수가 외국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던 시절 대림은 1966년 베트남에 진출해 미군기지 공사를 따냈다. 현대건설이 1965년 태국의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으니까 대림은 현대와 거의 같은 시기에 해외건설이라는 불모지 개척에 성공한 셈이다.
이재준은 장남인 이준용에게 해외건설 프로젝트의 총지휘를 맡겼다. 이준용은 미국 덴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영남대와 숭실대에서 교수생활을 했는데 부친의 명을 받고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1995년부터 대림그룹의 회장이 됐다.
재계순위 18위
대림은 건설업 성공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해갔다. 1978년에는 자동차부품 회사인 대림공업을 세웠다. 1982년 기아자동차 계열사로서 모터사이클을 생산하던 기아기연을 인수합병했다. 지금은 대림자동차공업이다. 1979년에는 국영기업이던 호남에틸렌을 인수해 석유화학산업에도 진출했다.
1991년 장남인 이준용에게 사업을 모두 맡기고 독서로 여생을 보내다가 1995년 세상을 떠났다. 78세였다. 그 후로 대림은 계속 발전했다. 이편한세상이란 브랜드 아파트를 국내 최초로 내놓은 곳도 대림산업이다.
2017년 자산총액 18조원이고 재계 순위도 18위다. 며칠 전 지나쳐온 디타워 생각이 난 김에 대림산업의 역사를 훑어봤다.
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