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작 '옥자'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입력 2017-06-14 14:33
수정 2017-06-14 14:45
'옥자' 스트리밍 사이트-극장 동시 개봉 논란
봉준호 "다 내 욕심 탓…영화계 변화 신호탄 됐으면"



"가는 곳마다 논란을 몰고 다니게 됐습니다. 극장 개봉과 스트리밍을 동시에 하는 영화에 대한 룰이 만들어지는 데 신호탄이 됐으면 합니다."

영화 '옥자'의 연출을 맡은 봉준호 감독이 스트리밍 기반 영화의 극장 상영 논란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앞서 '옥자'는 지난달 열린 제7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경쟁 부문에 진출, 세계 영화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현지 첫 상영부터 일부 기자와 관객들이 야유를 보내는 등, 온라인 스트리밍 영화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14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 서울에서 진행된 '옥자'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바쁜데 프랑스 국내법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라며 "하지만 영화 외적으로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옥자'의 타고난 복이 아닌가 싶다"라고 밝혔다.

봉 감독은 "칸 영화제 전에 미리 정리됐다면 좋았을 텐데 불러 놓고 논란이 되니 민망했다"라며 "영화는 항상 논란이 필요한데, 초반 분위기를 달구는 데 공헌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옥자' 논란 이후 프랑스 현지에서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기반 영화에 대한 규정이 생긴 상황이다.

하지만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옥자' 보이콧 현상은 계속 되고 있다. 이 영화는 29일 넷플릭스 공개와 동시에 국내 영화관에서도 동시에 상영되기 때문.

봉 감독은 "영화적 욕심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며 "영화를 큰 화면에서 보여주고 싶은 욕심 때문에 스트리밍과 극장 동시 개봉을 시도했다"라고 해명했다.

봉준호 감독은 멀티플렉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칸도 '옥자'가 지나고 새로운 룰이 생긴 것처럼 한국에서도 '옥자'가 규정을 정비하는데 신호탄이 되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관계자들께는 죄송하지만 스트리밍과 극장 화면 모두 보여주고 싶은 건 감독으로서 당연한 욕심"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옥자'는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이 거대 글로벌 기업 미란도의 '슈퍼돼지 프로젝트'에 이용당하게 된 자신의 친구이자 가족 옥자를 구하기 위한 어드벤쳐 영화다.

영화는 유전자 조작 돼지와 공장식 도축 시스템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육식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공장에서 대량생산 하듯 동물을 편입시켜 잔인한 환경 속에서 파이프라인의 일부분으로 만든 것에 대해 반대한다"라고 강조했다.

감독은 이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찾은 콜로라도 도살장에서 섬뜩한 경험을 한 후 일시적으로 채식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 시대는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데 그에 대한 피로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자와 옥자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소신을 전했다.

미란도 기업의 CEO는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튼이 맡아 '설국열차' 이후 봉준호 감독과 조우하게 됐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틸다 스윈튼은 "고향에 온 기분"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아름다운 '옥자'를 고향인 한국에 데리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렇게 방문하게 되니 우리는 모두 한국 영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들뜬 속내를 전했다.

틸다 스윈튼은 '옥자'에 대해 미자와 옥자의 성장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는 메시지보다 암시와 태도를 표현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우리가 성장할 때 사랑과 신뢰를 포기할 필요가 없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가치를 보존하고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14살이 된 배우 안서현은 옥자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 미자 역을 맡아 아역 배우 이상의 연기를 선보였다.

봉준호 감독은 소녀 미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 "소년들보다 소녀가 강할 때 매력이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이어 "안서현은 처음부터 '내가 옥자의 엄마이자 보호자'이며 덩치는 몇 배 큰 존재이지만 옥자를 지키는 존재로 명확하게 인식했다"라며 "누구도 이 아이를 막을 수 없었다"라고 칭찬했다.

안서현은 "대본을 볼 때보다 영화를 편집하면서 감독이 담은 이 영화의 함축적인 의미를 깨닫게 됐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식량난과 자본주의에 의해 옥자가 만들어지고 끌려가는 내용이다"라며 "지구에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고, 우리가 풀어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 시리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도 '옥자'에 힘을 보탰다.

그는 '옥자'에서도 한국계 미국인이자 비밀 동물 보호 단체의 2인자 케이 역을 맡았다.

스티브 연은 "실제로도 케이의 삶을 살고 있다"라며 "영화에서도 미국 현지에서도 문화의 경계에 살고 있다. 외로운 존재라는 것은 모든 이민자가 겪는 일이다. 이 경험이 '옥자'를 통해 개성 있게 전달된 것 같다"라고 출연 소감을 말했다.

이어 "봉준호 감독은 관객의 시각을 조정하려 하지 않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라며 "문화적인 시각에 따라 유실되는 점은 있겠지만 어린 소녀 미자와 옥자의 감동적인 스토리는 언어를 뛰어넘어 유실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중견배우 변희봉은 미자의 할아버지 '희봉' 역을 맡아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에 이어 봉준호 감독과 네 번째 호흡을 맞췄다.

그는 "봉 감독의 책에는 항상 메시지가 있다. 어떤 작품도 그냥 흘러가는 법이 없다"라며 "그 메시지의 매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극찬했다.

또 "이번에 칸에 가서 봉준호 감독의 위상을 똑똑히 보고 왔다"라며 "오랜 기간 연기를 했지만 이 변희봉이 칸 영화제에 참석해 별들의 잔치를 봤다.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라고 인사를 잊지 않았다.

비밀 동물 보호 단체의 멤버 블론드 역의 다니엘 헨셜은 "'옥자'를 본 사람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미국 드라마 '브래이킹 배드'에서 매력적인 악역으로 출연했던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는 미란도의 그림자 프랭크 도슨 역을 맡았다.

그는 "'옥자'는 우리 의식을 일깨우는 인류애를 담았다"라며 "그래서 '옥자'는 러브 스토리"라고 밝혔다.

이어 "꼭 어떤 메시지를 얻어가라는 것이 아니다. 옥자를 위해 세상을 상대로 싸우는 미자의 헌신을 보면서 공존하고 사랑하는 법을 알고 공유하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옥자'는 오는 29일 국내 개봉을 비롯,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 국가에 동시 공개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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