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독신선언 나서는 '비혼족' 직장인, 파티 열고 지인 불러 '축의금 회수'…동기 회식 비용 패스권 얻기도

입력 2017-06-12 18:54
수정 2017-06-13 07:19
결혼식 줄 잇는 6월 비혼족들의 웃픈 계절


[ 선한결 기자 ]
5월과 6월은 결혼의 계절이다. 한 해 중 많은 결혼식이 이뤄지는 때다. 그만큼 청첩장을 주고받는 일도 늘어난다. 서로 축복을 주고받을 일이지만, 남몰래 속을 끓이는 이들도 많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여기는 미혼(未婚)자들과 결혼을 아예 하지 않기로 결정한 ‘비혼(非婚)족’들이다. 이들에겐 축의금부터 걱정거리다. 사내 결혼식을 다 챙기려면 만만치 않은 돈이 나가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해외·야간 근무 명단 1순위에 오르는 일도 다반사다. 직장 상사들의 ‘불편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결혼했거나 아이를 낳은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사내 복지를 볼 때는 속이 쓰리다. “직장 생활을 위해선 위장 결혼이라도 해야겠다”며 쓴웃음을 짓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결혼식 대신 ‘비혼식’

한 홍보회사에서 근무하는 윤모씨(36)는 직장에서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축의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란 현실적인 고민에 빠진다.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서다. 친한 사람에게만 ‘선별적으로’ 축의금을 내려 해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매달 축의금 비용을 계산할 때마다 괜히 울적해진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이유로 결혼하지 않은 직장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축의금을 보전받고 있다. 건설업체에서 일하는 강 대리(32)는 최근 ‘동기 회식 비용 패스권’을 얻었다. 그는 3년 전부터 여자 친구와 ‘결혼 없는 연애’를 하기로 약속한 비혼족이다. 지난달부터 사내 축의금으로만 자취방 월세만큼의 돈이 나가자 고민 끝에 아이디어를 냈고, 결혼한 동기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강 대리뿐만 아니라 다른 비혼족들도 앞으로 동기끼리 회식할 때는 비용을 내지 않기로 했다. 강 대리는 “축의금으로 나가는 돈이 평소 회식 때 내는 비용보다 훨씬 크긴 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된다”며 “부서 내에도 비슷한 방식을 제안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예 ‘비혼식’을 여는 경우도 있다.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대신 미리 축의금만큼 돈을 챙기는 것이다. 디자인업체에서 일하는 박 과장(38)은 지난달 친구와 지인을 초대해 파티를 열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덕담과 함께 축의금조로 돈을 냈다. 박 과장은 행사가 꽤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제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평생 아무에게도 축의금을 안 내고 살 수는 없잖아요. 비혼식을 통해 앞으로의 인생도 축하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야근·특근 우선 동원 ‘억울’

결혼하지 않아 생기는 불편은 직장 내 일상에서도 이어진다. 한 정보기술(IT)업체에 근무하는 장모씨(32)는 팀에서 유일한 미혼이다. 이런 이유로 주말·공휴일 근무에 가장 먼저 동원되기 일쑤다. 팀장은 ‘챙겨야 할 가족이 있는 다른 팀원을 위해 희생해 달라’고 한다. 장씨도 팀장 말에 공감은 하지만 비혼자도 가족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주지 않는 것 같아 못내 섭섭하다. 그는 “이달 초 황금연휴 때도 하루 빼고 모두 출근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싱글이어도 동생과 부모님 등 챙겨야 할 가족은 다 있어요. 혼자라서 서러운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니 마음이 더 무겁네요.”

플랜트 기업에 다니는 박 대리(32)는 올해 초 원치 않는 해외 근무에 차출될 뻔했다. 체류 기간이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데다 당장은 급여 이점도 크지 않아 다들 손사래를 치던 자리였다. 직장 상사들은 “아내와 두 살 딸이 있는 최 대리보다 결혼 안 한 네가 가는 것이 낫지 않냐”며 설득을 거듭했다. 어쩔 수 없이 짐을 쌀 처지에 내몰렸다가 계약이 늦춰지면서 올해 해외 근무는 간신히 피하게 됐다. “올해는 가까스로 해외 근무를 피했지만 내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가짜 청첩장이라도 돌려야 하나 싶다니까요.”

결혼 안 했으면 사내 혜택이 절반?

미혼 또는 비혼족 직장인의 고민은 또 있다. 결혼을 전제로 짜인 사내 복지 시스템 때문이다. 한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박 대리(29)는 요즘 상사들과 얘기할 때마다 손해보는 느낌이 든다. 지난해 회사가 자녀 학자금 지원을 늘리기로 결정해서다. 대학원 진학을 앞둔 박 대리가 자녀 학자금 대신 본인의 학자금 지원을 받을 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당연히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내 복지를 늘리는 데는 동감하지만,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몇 백만원씩 손해보는 느낌이라 속상할 때도 있어요. 비혼족뿐만 아니라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사내 복지도 이원화해 운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분위기에 맞춰 복지 시스템을 바꾸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29)는 다음달부터 월 5만원의 지원금을 받는다. 독신을 선언한 경력 5년 이상 직원이 반려동물을 키울 경우 지원금을 제공하기로 회사가 결정하면서다. 자녀가 있는 기혼자에게 자녀 수당을 주듯 독신자에겐 반려동물 수당을 줘 형평성을 조금이라도 맞춰보자는 취지다. 김 대리는 “회사의 참신한 사내 복지 확대 정책에 젊은 직원들의 호응이 크다”고 말했다.

“결혼할 사람 있다”는 거짓말도

비혼족이 아닌 직장인들에게도 결혼은 항상 고민거리다. 한 대기업에 다니는 최모씨(36)는 벌써 3개월째 주변에 남자 친구가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 원활한 직장 생활을 위해서다. ‘대외용’ 애인이 없던 시절 최씨는 미혼 직원에 대한 상사들의 쓸데없는 배려와 관심에 시달려야 했다. 한 팀장은 거래처에서 젊은 남성 직원이 찾아오자 최씨를 불러 ‘즉석 소개팅’을 시키기도 했다. 회식 때 “부모님 생각도 하라”는 잔소리는 예사였다. 최씨가 “만나는 남자가 생겼다”고 둘러대기 시작한 이유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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