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정부가 치매 환자 의료비 부담 절반으로 낮춰준다는데…

입력 2017-06-12 09:01
[ 허원순 기자 ]
정부가 치매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치매 환자의 의료비 중 국민건강보험의 부담(보장)률을 현행 80%에서 90%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환자 본인 부담률은 20%에서 10% 이하로 줄어든다고 해서 언론에서는 ‘반값 치료비’로 평가하며 크게 보도했다. “치매는 이제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시작된 복지 정책이다. 결국 비용 문제로 이어진다. 정부가 치매 치료비까지 확 줄여주겠다는 것은 타당한가. 다른 중증 환자들과 형평 문제는 없나.

◆ 찬성

“가정 파괴하는 치매 국가가 보살필 때 됐다”

치매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가까이서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한 개인을 파멸시키고 가정을 풍비박산시키는 재앙이다. 당사자나 가족들에게만 맡기기엔 너무 버거운 중증 질환이다.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치매 질환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치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건강보험공단 통계를 보면 치매환자는 2013년 40만 명에서 2014년 44만 명, 2015년 50만 명 수준으로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금은 한국의 치매 환자가 69만 명에 달해 65세 이상 인구에서는 열 명 중 한 명꼴이라는 통계도 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긴 하지만 1인당 연간 진료비가 늘어나고 있다. 2013년 344만원이었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2014년 365만원으로 늘었다. 본인 부담률을 20%에서 10% 이하로 줄이면서 노인요양시설도 크게 확충해 나가야 한다.

치매치료센터도 아직까지 전국에 47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서울에 40개가 몰려있어 지방과의 격차도 심하다. 이 센터를 전국에 걸쳐 250개 정도로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타당성이 있다. 이 질환을 국가책임제로 가자는 것이다. 과거 폐결핵 소아마비 같은 질환을 국가가 중점적으로 관리한 적도 있다. 치매 환자는 혼자 의사결정이 불가능하고 사고까지 유발할수 있지만 노인요양시설 수용률은 24%에 그친다. 치매 부모를 공립요양원에 보내려면 대기자 때문에 20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이런 문제에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한다. 한국의 경제력이 그 정도 수준은 됐다.

◆ 반대

“취지 좋아도 재원 감안해야다른 질환과 형평성도 문제”

치매가 무서운 질환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치매로 인한 개인과 개별 가정의 부담이 크다는 점도 주지의 사실이다. 가급적 국가 사회에서 더 많이 보살피고 필요한 저소득층에는 치료비 지원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근본 문제는 비용이다. 가뜩이나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심화되면서 현행 국민건강보험의 재정구조는 앞으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건강보험료를 대폭 올리면 그에 따른 저항이 만만찮은 게 현실이다.

건강보험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는다면 정부 재정에서 직접 보전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이 또한 증세로 이어지니 비용 측면에서 보면 결국 같은 문제로 귀결된다.

치매가 사회적 문제라면 그동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무엇을 했나. 중장기 프로그램을 세우고 재정문제를 감안하면서 대응 일정을 차분히 세웠어야 했다. 대통령이 치매 시설을 방문해 한마디 하자 화들짝 지원 대책을 세우는 식의 즉흥적인 보건의료 행정이라면 단단히 문제가 있다. 다음에 대통령이 “암이야말로 문제”라면 암치료비 지원대책을 세우고, “일반 성인병도 모두의 걱정거리”라면 온갖 성인병 치료비 지급 방안을 뚝딱 세울 것인가.

국민건강보험이 장기적 관점에서도 지속적으로 제도가 유지되는 한에서, 또 정부의 재정여건 내에서 소득을 감안해 정교한 지원책을 수립해야 한다.

선심 쓰듯 마구 의료비 지원 정책을 남발할 경우 의료보험료 등 준조세나 세금을 올려야만 한다. 증세는 국민 경제 부담으로 작용해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게 된다.

◆ 생각하기

“강요된 할인이나 인위적 가격 책정은 항상 부작용 뒤따라”

개인별로 딱한 사정은 많을 수 있다. 치매뿐 아니라 다른 중증 질환으로 고통받는 가정이 줄어들도록 노력해 가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는 ‘무상(無償)’ 또는 ‘반값’ 정책이 수반하는 위험이다. 공급자의 자발적인 가격 인하라면 반값도 좋고, 무상도 좋다. 소비자를 즐겁게 하는 경쟁의 힘이요, 시장의 역동성이다. 하지만 억지 반값, 강요된 할인, 제3자가 정하는 가격에는 부작용 뒤따르기 마련이다. 반값 치료비도 공급자 자율의 결정이 아니라면 누군가, 언젠가는 나머지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학비, 급식, 교복, 보육 등으로 부풀어오른 ‘무상시리즈’를 경계하는 이유도 같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