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드배치 연기' 결정 다음날, 백악관에 급히 불려간 미국 상무장관

입력 2017-06-11 19:15
한·미 동맹 세미나서 연설하려다 1시간도 채 안남기고 불참 통보

"환경영향평가 후 배치" 청와대 발표 후
트럼프, 국무·국방장관 '긴급호출'…정상회담 앞두고 통상보복 우려


[ 워싱턴=박수진 기자 ] 지난 8일 미국 워싱턴DC 의회의사당 옆에 있는 캐피털힐비즈니스센터. 한국무역협회(KITA) 주최로 ‘한·미 전략동맹대화’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에서 온 투자사절단 일행과 미국 기업 및 법무법인, 싱크탱크, 의회 관계자들까지 2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기조연설자로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사진)이 예정돼 있었는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연설시간인 오후 5시 반을 채 한 시간도 안 남겨놓은 시점에 상무부에서 연락이 왔다. 장관이 백악관 호출을 받아 참석이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기조연설 1시간 전 호출돼

로스 장관은 행사 준비 과정에서 “할 말이 있다”며 참석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미 통상정책을 주도하는 로스 장관의 무게감과 의욕 때문에 한국과 미국에서 많은 인사가 참석했다. 그는 늦게라도 참석하겠다고 했지만 이날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연설문은 장관 특별보좌관이자 주중 미국대사 테리 브랜스태드의 아들인 에릭 브랜스태드가 대독했다.

이날 기조연설 내용도 내용이지만 로스 장관이 급히 백악관으로 불려들어간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관련한 공식 발표는 없었다. 미국 내 정국 관련이거나 한국 관련이라는 두 가지 추측이 돌았다.

8일은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상원 청문회에 참석한 날이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이목이 청문회에 집중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청문회 시간에 워싱턴 북부 한 호텔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다.

그가 백악관으로 복귀한 시간은 오후 2시. 청문회 결과를 보고받고 3시 반에 곧바로 인프라 관련 기업인과 라운드테이블 미팅을 했다. 로스 장관이 백악관으로 호출된 시간은 그 이후다. 대통령이 ‘코미 정국’ 대응 방안을 협의하려고 다른 장관과 함께 호출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문제가 아니라 한국 문제 때문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전날 청와대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관련 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 여부를 환경영향평가 이후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평가 결과에 따라 이미 반입된 발사대 4기를 미국에 되돌려보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튿날 오전 사드 관련 업무 협의를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이들과 사드 대책을 논의했다. 미 국무부는 백악관 논의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청와대의 결정에 미국 정부가) 실망했다고 표현하고 싶진 않지만”이라고 국무부 대변인은 에둘러 표현했다. 로스 장관이 불려들어간 것은 그 이후다.


◆사드와 통상압박 연계하나

로스 장관이 사드 때문에 호출당했다면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안보와 경제·통상 이슈를 따로 보지 않는다. 그는 지난 4월 미·중 정상회담 뒤 “중국이 북핵 해결에 협조한다면 중국과의 만성적자 문제는 감내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정부와의 사드 엇박자로 인한 불만을 한국과의 통상 쪽에서 해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로스 장관은 이달 말까지 외국산 철강 수입 대응과 기존 무역협정 개선 방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한국 기업에는 민감한 일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이나 저간의 상황이 로스 장관을 호출할 만하다는 분석이다. 한국 철강기업 P사가 ‘시범 케이스’로 곧 상무부로부터 강력한 제재를 받을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한국의 새 정부가 사드 문제로 ‘외통수’에 걸렸다고 수군대고 있다. 모른 척 넘어갈 수 있는 사드 ‘불씨’를 다시 살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처지에 몰렸다고 지적한다. 사드 말고도 북핵 대응 등 양국 간엔 이견이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협상은 힘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말 그를 백악관에서 처음 만날 예정이다. 트럼프가 철강, 무역협정 등의 경제 문제를 꺼내며 ‘힘자랑’을 한다면 무슨 카드로 대응할지 주목된다.

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