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너무나 부러운 롤랑가로스 배우기

입력 2017-06-11 17:52
수정 2017-06-13 11:35
"매년 1.8억유로 버는 프랑스오픈
생활체육 확대 및 엘리트체육 조화
선수·경기 체계적 관리법 배워야"

윤종원 < 주 OECD 대사 jwyoon15@mofa.go.kr >


해마다 초여름이면 세계 정상급 테니스 선수와 수십만 관중이 프랑스오픈으로 몰려든다. 세계 4대 그랜드슬램 대회인 롤랑가로스의 앙투카 코트에서 1000여 명의 남녀 선수들이 20여 일 기량을 겨룬다. 상금만 3600만유로(약 450억원)일 정도로 경비가 많이 들지만 프랑스 테니스협회는 입장료와 방송중계권 등으로 매년 1억8000만유로의 수입을 거두며, 이 중 상당 금액을 지역 테니스에 투자한다. 금전 수익뿐 아니라 대회를 통해 프랑스를 세계에 알리며, 수많은 방문객은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대회 기간에 프랑스 테니스협회 회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롤랑가로스가 너무 부러워 성공 배경과 협회 운영, 정상급 선수가 많은 이유를 물어봤다. 세계 최고 서비스를 위한 3개년 프로젝트를 제시했다는 주디첼리 회장은 등록 회원이 110만 명에 이르는 넓은 저변, 클럽을 통한 생활 및 엘리트 체육의 조화, 체계적인 선수·코트·경기 관리를 비결로 꼽았다. 스포츠산업으로 자리잡아 일자리 효과도 큰데 지방을 포함한 협회 직원이 총 2만7800명이란다. 우리는 200명이 채 안 된다. 협회장이 되려고 돈을 내거나 무보수 명예직이 많은 우리 상황이 떠올라서 월급을 받는지 물어봤더니 최고경영자(CEO)로서 당연히 그렇다고 답하며 협회 운영, 주니어 양성 등 시스템을 한국과 공유하겠다고 했다.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고, 우민화 정책의 하나로 여겼던 때도 있었다. 이제 스포츠는 음악, 미술과 마찬가지로 국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전한 대중문화로 자리하고 있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다는데,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보고서에서는 학생들이 적당한 체육 활동을 할 경우 학업 성취도가 높고 불안감을 줄이며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포츠를 통해 심신 수련은 물론 팀워크의 중요성을 익히며, 규칙을 지키고 경쟁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체득한 아이들은 공정한 사회의 시민으로 자연스레 성장하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도 커진다.

순기능이 크다고 국가가 스포츠 전반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올림픽 금메달에 흥분하던 시대도 지났다. 정부 역할은 기본 환경과 기반을 마련하고 영재의 잠재력 발굴을 돕고 관련 단체가 공정하게 운영되는지 감독하는 것일 터이다. 현장에서 스포츠 문화를 확산하고 국민들과 교감하는 대한체육회와 종목별 협회의 역량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작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출전 선수도 제대로 못 챙긴 협회는 부진한 성적으로 호된 질책을 받았고 대기업 협회장이 30년 넘게 지원한 양궁팀은 전 종목 금메달 신화를 썼다.

롤랑가로스를 보면 우리 협회나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보인다. 우선 탄탄한 기초가 중요하다. 선수, 시설 데이터베이스와 경기 시스템을 체계화해야 한다. 현실 인식이 정확해야 실현 가능한 목표와 실행 방안이 나온다. 둘째,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종목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재정을 협회장에게 기대거나 정치인이 일회성 감투를 쓰는 풍토에선 비전과 실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 지원 외에 회원 등록제, 후원, 입장권 관리 등 안정적인 재원을 발굴해야 한다. 셋째,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파벌과 인맥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든다. 협회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하고 수입 지출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126년 전통의 롤랑가로스 시스템을 짧은 시간에 갖출 수는 없겠지만 기초를 닦고 정상적인 환경을 만들면 많은 변화를 일굴 수 있다. 공정한 경쟁, 체계적인 훈련 기회가 주어지면 뭐든지 악착같이 잘하는 우리 청소년들은 세계 무대에서 쑥쑥 커 나갈 것이다.

윤종원 < 주 OECD 대사 jwyoon15@mof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