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만6000명 중 5000명을 놀려야 하는 현대중공업

입력 2017-06-11 17:49
현대중공업이 일감 부족으로 하반기에 생산 인력 중 5000여 명을 놀릴 판이라고 한다. 전체 인력 1만6000명의 3분의 1 가까이를 일거에 해고할 수도, 장기 조선 불황 와중에 그대로 안고 가기도 어려워 고민이 커져 간다는 말이 들린다. 법적인 해고 요건도 완강하지만, 그 전에 강력한 노조 때문에 인력 정리는 생각조차 힘든 게 한국 산업계의 현실이다.

현대중공업 유휴 인력 문제에는 복합적인 사정이 얽혔을 수 있다. 호황이었던 2013년 이후 경영전략, 구조조정 여부, 조선업계 환경 변화와 대처 방안 등 회사의 여러 판단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다만 최근 희망퇴직으로 내보낸 3500여 명이 대부분 사무직이란 사실에서 확인되듯, 노조 반발로 생산직 인력 조정은 손도 못 대는 현실이 딜레마를 키웠다.

‘현대중공업 딜레마’는 기업이 공통으로 겪는, 아마도 경영의 최대 리스크 중 하나일 것이다. 해고를 매우 어렵게 만든 노동 관련법에 노조도 강력하다. 툭하면 정치권까지 개입한다. 현대중공업이 다음달부터 군산조선소를 잠정 폐쇄키로 했지만, 지역 정치 쟁점으로 비화하면서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이다. 지방의원들이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지역 국회의원이 가세해 청와대와 총리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무서운 외부 사공들만 늘어나는 판이니 회사의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현대중공업 딜레마는 고용 유연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준다. 비정규직을 무리하게 다 없애 위기 때 꼼짝 못하게 하고 신규 채용까지 막을 게 아니라 반대로 정규직의 고용 기득권을 깨는 게 해법이다. 한 번 채용하면 60세를 보장해야 하는 데 어떤 기업이 마음놓고 신규 고용에 나설 수 있겠나. 고용 유연성은 노동 개혁의 핵심이며, 이것만 확보돼도 일자리 창출에 도움될 것이라는 지적은 수없이 나왔다.

신규 일자리 차원만이 아니다. 회사가 살아남아야 근로자도 살고, 해고 근로자도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진리다. 대기업들의 무리한 고용 유지는 자칫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저임금 문제도 본질은 같다. 현대중공업 딜레마는 정규직화를 몰아붙이는 정부가 냉철히 봐야 할 생생한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