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조 자율주행차 시장이 달린다

입력 2017-06-06 19:30
수정 2017-06-07 05:11
'21세기 금맥' 자율주행차

미국 도로주행 실험 기업만 30개…AI 반도체 기술 확보 관건
"실험정신 강한 스타트업들, 자율주행차 최후의 승자 될수도"


[ 오춘호 기자 ]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실리콘밸리에 있는 자율주행 분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죽스(Zoox) 직원들은 자신의 회사를 자율주행자동차 제조업체로 부르지 않는다. 로봇업체라고 말한다. 2014년 창업했을 때 죽스는 서비스 업종으로 등록했다. 기존 자동차 제조기업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이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자율주행차에는 운전대와 브레이크 페달이 없다. 앞유리와 사이드 미러도 필요 없다. 얼핏 보면 생뚱한 차다. 창업한 지 3년 가까이 됐지만 회사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홍보도 거의 하지 않는다. 회사 정보 공개를 꺼리는 것으로 악명 높다. 그런데도 죽스에는 투자자가 몰린다. 작년 한 해에만 2억달러(약 2240억원)의 투자금을 끌어들였다. 투자자들은 죽스가 완전히 새로운 운송수단을 내놓을 것이라는 데 베팅한다.


◆스타트업 진출 러시

반도체 기업 인텔은 최근 보고서에서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가 2035년까지 8000억달러(약 894조6400억원)에 달할 것”이라며 “자율주행차 시대에 대비하지 않는 기업은 문을 닫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율주행차는 이미 21세기 ‘금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금광을 캐기 위해 수많은 기업이 뛰어들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교통국에 도로주행 실험을 하기 위해 등록한 기업만 30개에 이른다. 완성차 제조기업과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 기업은 물론 델파이, 보쉬 등 자동차 부품업체도 포함돼 있다.

특히 이목을 끄는 것은 스타트업의 약진이다. 30개 등록 기업 중 7개가 스타트업이다. 유다시티는 자율주행차를 직접 생산하지 않지만 생산된 차로 자율주행 택시사업을 하려는 업체다. 삼성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누토노미도 택시사업을 넘보는 벤처다. 이미 보스턴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시험운행하고 있다.

대기업에 인수되는 쪽을 택한 기업도 많다. 스타트업 크루즈 오토메이션은 제너럴모터스(GM)가 사들였다. 포드는 인공지능(AI) 전문 아르고를 10억달러에 인수했다. 센서업체인 이스라엘의 모빌아이는 15억달러에 인텔에 팔렸다. 우버는 자동트럭 업체인 오토를 6억8000만달러에 매입했다.

◆엔비디아·암 등 주목

반도체 업체도 주목받고 있다. 그래픽 반도체업계의 대명사 엔비디아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엔비디아는 AI를 처리하는 GPU(그래픽 처리장치) 기술을 처음 구현한 업체로 유명하다.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GPU 176개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중요성이 입증됐다. 빅데이터, 가상현실(VR) 등 최근 각광받고 있는 첨단 IT 분야에도 GPU 기술이 필수적이다.

이 기술에 완성차 업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확보하지 못한 기술이어서다. 엔비디아는 독일 폭스바겐, 아우디, 다임러벤츠와 제휴를 맺었다. 미국 포드와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 일본 도요타와도 협업하고 있다. AI 자동운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일본 IT기업 소프트뱅크가 320억달러를 투입해 인수한 영국의 암(ARM)도 AI를 포함한 특수 반도체를 설계하는 전문회사다. 이 회사는 최근 자율주행 전용 반도체를 개발해 화제를 낳았다. 자율주행차의 센서에서 나오는 신호를 즉각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다.

인텔은 2015년 AI용 반도체 개발기업 알테라를 167억달러에 사들였다. 인텔은 독일 BMW와 제휴해 지난 1월 자율주행용 새 브랜드인 인텔고를 선보였다. 스마트폰 반도체 제조업체 퀄컴은 올해 초 세계 1위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네덜란드 NXP반도체를 300억달러에 매입했다.

◆자율주행 분야 승자는

미국의 기술평가 기업인 네비건트리서치가 최근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는 업체들의 기술 수준을 평가한 결과 예상과는 달리 구글이나 테슬라에 비해 GM, 포드, 르노닛산, 다임러의 기술이 더 뛰어났다. 현재 실용화되고 있는 자율주행은 2단계로 분류되는 운전 보조 기능이다. AI 기술이 본격적으로 나오지 않는 이 단계에서 자동차업계가 약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조건에서든 운전을 자동차에 맡기는 3단계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AI가 반드시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이 단계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자율주행차의 등장은 운송수단 혁명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구상되고 있다. 기존 업체보다 새로운 실험을 하는 스타트업이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