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애국' 22번 나왔다

입력 2017-06-06 14:41
수정 2017-06-06 16:14
문재인 대통령(사진)이 6일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낭독한 추념사는 '애국'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12분에 걸쳐 읽어내려간 추념사에는 애국이 22차례나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정신적 원동력이 국민의 애국심이라는 것을 강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작구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읽은 추념사에서 "우리 국민의 애국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라며 "애국이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해냈다"고 말했다.

눈길을 끈 것은 애국 자체를 강조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을 극복할 바탕으로 애국을 언급한 점이다. 문 대통령은 '좌우' 진영을 모두 애국의 주체로 아울러 적시했다.

민주화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하다 희생당한 진보 인사들과 산업화 과정에서 헌신한 파독 광부와 간호사, 봉제공장 여성 노동자 등 평범한 국민도 '애국자'였음을 강조했다. 애국을 마치 보수진영의 전유물인 것처럼 치부해온 관행적 규정에 선을 그은 셈이다.

문 대통령은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모두가 애국자였다"이라며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지지도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대한민국"이라고 강조했다.

추념사에서 '태극기'는 통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어로 사용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태극기가 마치 보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됐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태극기는 진영과 이념을 넘어서는 애국의 표징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의 품속에 있던 태극기가 고지쟁탈전이 벌어지던 수많은 능선 위에서 펄럭였다"며 "파독 광부·간호사를 환송하던 태극기가 5·18과 6월 항쟁의 민주주의 현장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애국을 통치에 활용하는 구시대적 정치를 청산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애국을 이념적 코드로 이용하고 보훈정책을 정치화하면서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고 했던 과거 일부 정권의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국가보훈처의 위상을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고 역할을 강화하겠다고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보훈이야말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강한 국가로 가는 길임을 분명히 선언한다"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반역자는 심판받는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보훈 행보'는 대선과정에서 안보 불안감을 느껴온 중도와 합리적 보수층에 상당한 호소력을 가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추념사에는 '한국전쟁'이나 '6·25전쟁' 등의 표현이 나오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직접적 언급도 없었다.

문 대통령은 다만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는 동안 목숨을 바친 조국의 아들들이 있었다" "철원 '백마고지', 양구 '단장의 능선'과 '피의 능선', 이름 없던 산들이 용사들의 무덤이 됐다"는 등 한국전쟁을 간접적으로 연상케 하는 단어들만 썼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흐름에 동참하면서도 북한과의 대화의 여지를 열어두려는 포석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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