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현우 기자 ]
■ 체크포인트
도로, 철도,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이 경제 발전에서 왜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 토론해 보자.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는 ‘우리 국토의 대동맥’이라 불린다. 주요 도시를 여럿 거쳐갈뿐 아니라 한국 경제가 본격 성장가도에 오른 1960년대 지어졌다는 점에서 역사적 상징성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런 큰 도로를 어떻게 짓느냐”며 반대가 거셌던 당시 이 공사를 성공적으로 해 낸 곳은 국내 건설업체인 현대건설이다.
1947년 5월25일 세워진 이 회사는 최근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현대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의 상징인 ‘불굴의 도전정신’은 현대건설의 역사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광복 직후와 6·25 전쟁 이후 폐허 위에 도로를 닦고, 다리를 연결하고, 건물을 세워왔다. 일찌감치 중동으로 진출해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며 한국의 경제 성장에 힘을 보탰다. 지난해에는 국내 건설사 최초로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했다. 재계에서 이 회사의 역사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70년”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고속도로·한강다리·발전소까지 척척
현대건설은 전후 복구사업에 이어 1960년대 토목 분야를 중심으로 전기, 플랜트, 건축 전 분야의 시공 경험을 쌓으며 기술력을 높여갔다. 그 결과 국내의 핵심 인프라 중에는 현대건설의 손을 거쳐 완성된 것들이 많다. 여의도 면적의 30배 규모인 서산 간척사업은 현대건설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덕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사례다. 영토를 넓히기 위해 1977년 시작된 이 간척사업은 막바지 단계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물살이 너무 빨라 6.5㎞ 방조제의 물막이 공사가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22만t급 대형 유조선으로 물 흐름을 막아놓은 다음 흙을 쏟아붓자고 제안했다. 훗날 ‘정주영 공법’으로 불리게 된 이 방식을 통해 현대건설은 공사기간을 36개월이나 단축했다. 외신에도 소개될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아 영국 템스강 하류 방조제 공사를 맡은 회사가 자문을 요청하기도 했다.
건설업계 최초로 해외시장 진출했죠
현대건설은 1966년 국내 건설업계 최초로 해외 건설시장에 진출한 회사이기도 하다. 당시 첫 글로벌 프로젝트였던 태국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59개국에서 3600여건, 총 수주액 1227억달러어치의 해외 공사를 수행했다. 2011년 연간 수주액 100억달러를, 2013년 해외 수주 누적액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정부 주도의 중동 진출이 시작되기 전인 1975년 현대건설은 이란에 지점을 설치, 일찌감치 중동 진출에 나섰다. 이듬해인 1976년 ‘20세기 최대 역작’이라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했다. 모든 자재를 국내에서 제작해 해상으로 운송한 뒤 수심 30m 파도를 견뎌내며 500t짜리 철 구조물을 말끔히 완성해 발주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5년에는 국내 건설사의 해외 플랜트 수주 사상 단일 규모로는 최대인 16억달러어치의 사우스파 4·5단계 공사를 맡았다. 당시 이란 대통령이 눈시울을 붉히며 “사우스파 전체가 완공될 때까지 현대건설은 절대 이란을 떠나서는 안 된다. 나머지 공사도 모두 수행해 달라”고 신신당부한 일화는 지금도 건설업계에 회자되고 있다.
“현대건설 70년 역사는 한국 경제발전의 역사”
현대건설은 전 세계에 뻗어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남미(카라카스·산티아고), 유럽(이스탄불), CIS(타슈켄트), 이란(테헤란) 등에 지사를 새로 세우는 등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박원철 현대건설 팀장은 “기존 중동 지역에서는 고부가가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신흥시장에서는 신규 수요 창출에 집중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권의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현대차그룹의 105층 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공사도 현대건설이 맡는다. 풍력, 조류발전, 태양광발전 등에도 진출해 신성장동력 발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
자료제공 : 현대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