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슈퍼 토스카나' 와인의 고향…개성 넘치는 맛과 향에 취하다

입력 2017-06-04 15:36
나보영의 걸어서 와인 속으로 - 이탈리아 볼게리 마을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여행하다 보면 어디서나 두툼한 고기와 거기에 어울리는 산지오베제 와인을 만난다. 처음에는 그 요리의 향연이 반갑다가도 비슷한 식사가 몇 날 며칠 계속되다 보면 어느덧 물리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럴 땐 서부의 해안가 마렘마 지역으로 향해야 한다. 이곳에선 토스카나를 상징하는 육류 대신 싱싱한 해산물이 여행자를 반긴다. 그들의 와인리스트는 ‘베르멘티노’라는 품종으로 만드는 신선한 화이트 와인으로 시작된다. 또한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등의 다양한 품종을 블렌딩한 레드 와인으로 이어진다.

마렘마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생산지는 ‘마렘마의 황금빛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볼게리 마을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슈퍼 토스카나’ 와인의 고향도 바로 이 볼게리다. 선발주자인 ‘사시카이아’를 비롯해 ‘오르넬라이아’ ‘그라타마코 로쏘’ ‘구아도 알 타소’ 등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그중 몇몇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한 적이 있다. 역사적인 그라타마코 와이너리의 안내자는 명쾌하게 슈퍼 토스카나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이 지역 자연환경은 토스카나의 토착 품종인 산지오베제 재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대신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같은 프랑스 출신의 국제 품종 재배에는 탁월하죠. 1960년대 말부터 이런 특성을 살려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토착 품종을 사용해야만 높은 등급을 주던 시대에 과감히 전통을 깨고 혁신을 일으킨 거죠.”

전설적인 와인 명가 안티노리가 소유한 구아도 알 타소의 안내자는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볼게리 지역 와인 메이커들은 다양한 품종을 가지고 마치 팔레트에서 여러 색을 섞듯이 다채로운 시도를 합니다. 색상환처럼 무수히 많은 조합을 만들어 보면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가죠. 그래서 볼게리의 와인들을 펼쳐놓고 보면 여러 장인이 지은 개성 있는 테일러 메이드 양복을 보는 것처럼 즐거워요.”

볼게리에서 시작된 이런 시도는 마렘마의 다양한 생산지에서 이뤄지고 있다. 마체이 가문이 소유한 벨구아르도 와이너리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카리냥 품종까지 접할 수 있었다. 와인 메이커인 페데리코는 “마렘마에 왔으면 해안가의 해산물 레스토랑에 반드시 들러야 한다”고 했다.

토스카나 내륙을 여행하는 동안 구운 육류나 고기를 볶아 넣은 파스타에 물린 참이었다. 올리브 오일과 레몬즙을 뿌린 해산물 요리가 어찌나 반갑던지! 알리오 올리오나 봉골레 같은 가벼운 파스타도 드디어 맛볼 수 있었다. 다채로운 품종의 와인들이 그 맛을 돋웠다. 베르멘티노로 만든 화이트 와인의 청량감은 특히 잊을 수 없을 듯하다. 엷은 금빛이 감도는 와인을 잔에 따르자 신선한 살구, 배, 허브 향이 올라왔다. 입안에 머금었을 땐 마렘마 지역 토양 특유의 미네랄이 가득 느껴졌다. 창 너머로 들어오는 소금기 묻은 바닷바람이 운치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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