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정책 '후폭풍'
정규직 전환 부담에 신입사원 안뽑는 공기업들
취준생들 "우린 어쩌라고"
"비정규직이 정규직 정원 잠식
높은 경쟁률 뚫고 면접봤는데 공채 인원 줄어들어 되레 역차별"
인건비 부담에 채용 축소
정규직 전환으로 비용은 느는데 예산은 그대로…채용 여력 없어
정부 가이드라인은 아직 '감감'…채용 규모 등 확정도 못해
[ 박진우 / 공태윤 기자 ]
공기업 입사를 준비 중인 최모씨(28)는 정부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뒤부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공기업 입사를 위해 작년 말 민간 기업에서 퇴직한 최씨는 “가뜩이나 좁은 문이 이제 바늘구멍이 될 것”이라며 “한줄기 희망이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작업에 착수하면서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불안과 원성이 커지고 있다. 정규직 공채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합격한다 해도 처우가 지금보다 낮아질 것이란 게 취준생 우려다. 부채비율이 300~400%인 공공기관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하고도 정규직을 예년처럼 뽑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란 걱정이다.
◆공기업·공공기관 채용 줄줄이 중단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주요 공기업의 간접고용 인력 평균 연봉은 2400만~3000만원 수준이다. 정규직 연봉의 30% 내외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1인당 정규직 전환에 따른 연봉 상승을 3000만원으로 가정하더라도 1만 명 정규직 전환에 따른 비용은 연간 3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 실업자는 51만 명. 졸업하지 않은 취업준비생을 합치면 이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기관들은 정규직 전환 방침이 구체화되지 않아 비정규직 채용을 잠정 중단하고 있다. 정부 방침이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건비가 적게 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하면 비용 부담이 갑자기 늘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성동구청 소유 공공시설에서 한 직원은 “구청이 직원을 4명으로 늘려준 지가 언제인데 아직 2명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금융위원회 산하 공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이모씨(30)는 “지난달 말에 계약직 정원이 세 자리가 났는데 여태껏 공고를 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계약직에 취준생 몰리고 역차별 논란
그나마 있는 계약직 일자리에는 구직자가 몰리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한 지방사무소 상담직을 뽑는 데 40명이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무소장은 “젊은 층까지 이런 상담직에 대거 몰려드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현재 계약직 채용공고가 열린 LH 산하 지역본부 14곳 대부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원해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취업을 준비 중인 연세대 재학생 이모씨(27)는 “정치인들은 ‘일자리 현황판’ 같은 숫자에만 집중할 뿐 취업시장에서 발언권이 약한 취준생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결국 계약직에라도 지원하고 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정규직을 준비하는 취준생에게 역차별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력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이모씨(29)는 “필기시험에서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면접을 봤는데 비정규직 직원만 배려하는 건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채로 진행해서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한다”며 “갑작스러운 정규직 전환 논의는 공기업 정규직으로 입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취준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고 지적했다.
◆취업준비생을 위한 정책 보완 시급
공기업 취업 일선의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언제 나올지 예상하기 힘들어서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6월 가이드라인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조세재정연구원이 진행 중인 공공기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 실태조사에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기획재정부가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하반기에나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채용에 장기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신용보증기금 관계자는 “공공기관은 예산 통제를 받기 때문에 정부 가이드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정 탓에 취준생을 위한 임시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음주 정규직 면접을 앞둔 김모씨(26)는 “단시간·기간제근로 사무직 전환의 경우는 다른 취준생과 같은 시험을 치르게 하되 약간의 가산점을 주는 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가되 남아 있는 비정규직도 취준생들이 정규직으로 가는 ‘사다리’로 활용할 수 있게 정책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진우/공태윤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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