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서 '마이웨이' 트럼프에 실망
"미국·영국 등에 의존하는 시대 끝나"
[ 이상은 기자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대(對)러시아 안보 문제, 기후변화 대응, 보호무역주의 등 국제 이슈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유럽의 주장에 ‘어깃장’을 놓으면서 피로감이 쌓인 탓이다.
29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28일(현지시간) 자신이 속한 기독민주당(CDU)과 연정을 꾸린 기독사회당(CSU)이 독일 뮌헨에서 연 유세 행사에 참석해 “지난 수일간 내가 경험한 것은 다른 이에게 (공동 행동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는 거의 끝났다는 점”이라며 “우리 유럽인들은 우리 손으로 우리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어 “미국 영국 러시아 등 다른 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해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후 EU 내에서 독일의 리더십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라고 FT는 분석했다.
지난 26~27일 이탈리아 시칠리아 타오르미나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개막식에 늦게 참석하는 등 여러 무례한 행동으로 구설에 올랐을 뿐 아니라 지난해 11월 발효된 파리기후협약을 준수할 수 없다고 버텨 다른 정상들과 갈등을 빚었다.
그는 최종 성명에 보호주의를 배격한다는 내용, 난민 문제에 공동 대응하자는 내용을 넣자는 주장에도 반대했다. 메르켈 총리는 G7 회의가 “매우 불만족스러웠다”며 “미국이 파리협약 틀 안에 머물겠다는 어떤 말도 없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유럽 순방 기간 독일의 대미 무역흑자를 꾸준히 비판한 것에 대해서도 메르켈 총리는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도 다른 나라들이 각국 국내총생산(GDP)의 2%를 방위비로 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비난하고, 러시아 등을 겨냥한 회원국의 공동대응 관련 규정(NATO 5조)을 지키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하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의 발언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자 슈테펜 자이베르트 대변인은 29일 “메르켈 총리는 독일·미국 관계를 중요하게 본다”며 “독일은 이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