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공약' 대가는 혈세 투입 … 최소 2400억 시민이 갚아야

입력 2017-05-26 18:00
수정 2017-05-27 05:24
'예고된 비극' 의정부 경전철 파산

부풀린 승객 예측…20%대 그쳐 적자 눈덩이
전국 지자체들 공약사업 부실화에 재정 '골병'


[ 백승현 기자 ]
1995년부터 무려 12년을 공들여 첫삽을 뜬 의정부 경전철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경전철이라는 새로운 사업임을 고려하더라도 장밋빛 수요 예측과 허술한 계약 관리 등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많다. 경전철뿐만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공항 건설, 위락시설 신설 등 공약이 쏟아지지만 이후 사업이 좌초해 발생하는 적자는 대부분 ‘혈세’로 메우고 있다.

◆4년10개월간 무슨 일이…

의정부 경전철은 1995년 추진 발표 이후 건설사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인구 2000만 명이 넘는 수도권 첫 경전철인 데다 친환경 대중교통 수단으로 평가돼 큰 수익이 기대됐기 때문이다. 포스코건설 컨소시엄과의 법정 다툼 끝에 GS건설(당시 LG건설)이 시행사를 맡았다.

2007년 7월 첫삽을 떴고, 개통일인 2012년 7월1일은 의정부 시민들의 축제일이었다. 하지만 축제 열기는 금방 식었다. 개통 한 달 동안 하루 최대 이용객은 1만5000여 명, 평일에는 1만2000여 명에 그쳤다. 당초 예상치(7만9000여 명)의 20% 수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운행시스템도 불안해 수시로 멈춰 서면서 ‘고장철’이라는 오명까지 끌었다.

승객이 적어 적자는 당연했다. 사업 추진을 위해 승객 수요를 부풀렸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국민은행 농협은행 등 대주단은 2015년 승객 수요 조사를 다시 의뢰했다. 그 결과 예상 승객 수는 2025년 5만 명, 2033년부터 5만3000명이 될 것으로 나왔다. 애초 수요 예측이 부풀려진 것이다.

적자는 시행사가 그대로 떠안았다. 승객이 예상치의 50%는 될 것으로 보고 맺은 허술한 계약이 문제였다. 협약은 승객 수가 예상 수요의 50~80% 안에 들면 의정부시가 경전철 측에 손실금을 물어주도록 돼 있다. 그러나 경전철 이용객이 하루 평균 3만5000명 수준(예상 수요의 44%)에 머물면서 손실 보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승객을 늘리기 위해 2014년 경로 무임승차제와 수도권 환승할인제를 도입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4년 여를 운행하며 발생한 적자는 3600억원, 시행사의 금융비용까지 합하면 4000억원에 달했다. 2015년 11월 사업 재구조화가 논의됐고 시행사는 경전철 사업 포기 대가로 연간 150억원 이상을 요구했다. 의정부시는 50억원 수준을 제시했다. 결국 경전철 측은 지난 1월 서울회생법원에 파산을 신청했고, 법원은 4개월 여의 심리 끝에 파산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의정부시는 계약해지 지급금 2400억원을 혈세로 갚아야 한다.

◆포퓰리즘 대가는 혈세

무리한 수요 예측으로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의정부 경전철뿐만이 아니다. 부산김해 경전철, 용인 경전철도 수천억원을 쏟아부었지만 승객이 적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전철 외에도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의 무리한 공약으로 재정이 악화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 월미은하레일이다. 인천시가 관광 명소인 월미도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10년 준공한 월미은하레일은 부실공사와 안전성 문제로 7년째 개통도 못한 채 고철로 남아 있다. 건설비 853억원을 포함해 금융비용까지 약 10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천안시가 565억원을 들여 만든 6만1500㎡(축구장 8개) 규모의 신부동 도솔 광장은 공터로 전락했다. 잔디광장, 시민의숲 등을 갖춰 젊은 층이 많이 찾게 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경부고속도로 변에 위치해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상비만 400억원이 넘게 들어가 땅 주인들만 좋은 일 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자체장과 국회의원들의 ‘표(票)퓰리즘’에 혈세 낭비는 물론 계약관계상 ‘을’의 위치에 있는 건설사도 피해를 보고 있다. 이렇다 보니 건설사들은 최근 고수익을 포기하고 위험분담형 민자사업(BTO-rs) 방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BTO-rs(risk sharing)는 민간 사업자와 정부(지자체)가 이익과 손실을 절반씩 나누는 방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공사업은 예상 수익은 제한적이면서 투자에 따른 손실은 시행사가 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렇다 보니 기업으로서는 명확한 수익률 계산이 나오지 않으면 사업 참여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전국 종합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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