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스토리] '비번' 걸린 상점 와이파이를 걸어다니며 쓸 수 있다고?

입력 2017-05-25 17:20
길거리 와이파이 공유 서비스 구현한 파이언스

광고 보면 와이파이 비번 공유…소상공인-행인 '윈윈' 이끌어내

서울 시내 7만개 상점 돌며 홍보
잡상인 취급도 여러 번 받았지만 출시 2년 만에 12만 회원사 유치

개개인 동선·소비패턴 활용해 정보 플랫폼으로 키우는 게 꿈


[ 남윤선 기자 ]
통신비는 우리 삶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 월 통신비 지출은 14만원 수준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공약이 나오지만 상황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모두가 원하는데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할 일이다. 하지만 통신비 인하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이슈다. 스타트업이 엄두를 내기 힘들어 보인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발상의 전환으로 이 과제를 풀어내고 있는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 아이디어만 참신한 게 아니다. 놀라운 실행력으로 서비스를 구현해냈다. 와이파이 공유 서비스인 ‘프리파이’를 운영하는 파이언스 이야기다.

발로 뛰어 실행해낸 탁월한 아이디어

프리파이 서비스 모델은 처음 들으면 좀처럼 이해가 안 된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한국 노변에는 주로 상점들이 있다. 상점에는 각자의 와이파이가 있고 이를 손님에게 제공한다. 그런데 이 와이파이 전파가 보통 상점 밖 인도까지 닿는다. 이런 와이파이를 서로 연결하면 인도를 걸으면서도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다. 와이파이를 쓰는 사람에게 적당한 광고를 보게 하고 이 수익을 상점과 나누는 방식이다.

이해가 가더라도 실행 방안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가장 먼저 생각되는 문제점이 ‘어떻게 길가 상점들과 일일이 협의할 것인가’다. 서비스가 제대로 되려면 길을 걷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끊기지 않고 와이파이를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길가 상점들이 모두 와이파이를 제공해줘야 한다. 상점들은 대부분 와이파이에 비밀번호를 걸어놓기 때문이다.

유재홍 파이언스 대표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유 대표의 답은 간단했다. “서울 시내에서 7만여 개 상점을 일일이 돌아다녔습니다.” 듣고도 믿기 힘든 대답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재차 물었다. “직원 열 명이 하루에 몇십 군데씩 1년쯤 돌아다니면 되긴 됩니다. 잡상인 취급도 여러 번 받고 찾아갔더니 아르바이트생만 있어서 허탕친 경험도 많습니다만….”

사용자 7만 명 넘게 모아

유 대표는 피처폰 시대 때부터 개발 업무를 해왔다. 통신시장에 대해 잘 안다. 창업 이전부터 ‘와이파이를 공유할 수 있으면 통신비를 아낄 수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고 한다. 개발 관련 일이 잘 안 될 때는 수산물 가공공장과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소상공인의 마케팅 방안에 대한 고민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소상공인들은 전단 돌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고민을 정보기술(IT)로 풀 수 있는 방안이 없나 생각을 많이 했지요.”

그래서 창안해낸 서비스가 프리파이다. 소상공인들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행인에게 공유한다. 그리고 그 망을 쓰는 행인에게 광고를 한다. 잘만 서비스하면 행인과 소상공인이 ‘윈윈’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처음엔 일단 홍대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상점이 노변에 밀집해 있고, 그 동네 ‘주인’인 대학생들은 통신비 인하에 대한 수요가 크다. 홍대 쪽을 어느 정도 정리하니 주변 동네에도 입소문이 퍼졌고 예상보다 쉽게 회원사를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현재 12만여 개 점포를 회원사로 확보했다. 일부는 입소문을 듣고 알아서 가입했고, 일부는 대형 프랜차이즈 회사와 계약하면서 한번에 흡수됐다. 서비스 출시(2015년 6월 베타버전 출시) 2년여 만에 7만 명 이상의 MAU(월간 활성 사용자)를 모았다. 와이파이 접속 횟수로는 월 5000만 건 이상이라는 설명이다. 발로 뛰는 노력 끝에 결실을 거둔 것이다.

투자자들도 유 대표의 이 같은 노력을 인정했다. 파이언스는 벤처캐피털 더벤처스와 삼성벤처투자에서 자금을 유치했다.

“정보 플랫폼으로 키울 것”

이용자 수만 충분히 늘어난다면 다양한 광고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용자가 홍대에 오후 1시에 도착했다고 치자. 버스에서 내려 홍대 근처 와이파이를 잡으면 파이언스 측이 알 수 있다. 이 사용자는 아직 점심을 안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즈음 한 식당은 점심시간이 지난 1시에도 그날 준비한 식재료를 다 못 썼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해당 사용자에게 ‘점심식사 50% 할인쿠폰’을 보낼 수 있다. 식당 입장에서는 어차피 버려질 식재료를 활용해 좋고, 사용자는 반값에 점심을 해결할 수 있어 좋다.

궁극적인 목표는 프리파이를 정보 플랫폼으로 키우는 것이다. 개개인의 동선과 소비 패턴이 파악된다면 활용할 수 있는 건 광고 말고도 많다. 개인화된 콘텐츠를 비롯한 각종 정보를 보내주면서 부가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다.

유 대표는 LTE 등 통신서비스를 아예 대체하는 게 목표는 아니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서울시내 모든 매장과 제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다만 이 서비스가 통신 서비스와 공존하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 10만원대 통신비를 쓰는 소비자가 6만원만 내고도 현재와 비슷한 인터넷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앞으로 동영상의 퀄리티가 계속 높아지면서 소비자의 통신 사용량은 점점 늘어날 겁니다. 역설적으로 그럴수록 프리파이의 진가가 드러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