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드론의 탄생 뒤엔 축적된 원천기술 있었다

입력 2017-05-25 17:06
Let"s Master
기초과학 사업화 (1)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 이끈 건 90여년 전 영국 학자의 원천지식

제품개발 기술 못지 않게 기초과학에 장기적 투자 필수

한정희 < 홍익대 스마트도시과학경영대학원 교수 >



사람이 타고 직접 조종하는 드론이 등장했다. 자율주행 자동차나 알파고를 통해 알려진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못된다.

이 같은 신기술의 탄생과 이를 활용한 사업화의 산물인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의 출현 현상을 어느 날 누군가가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며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하늘을 나는 드론의 등장을 이미 117년 전 정확히 예견했다는 점이다.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당시 세계 최대 박람회가 열렸다. 이 파리 만국박람회 한쪽에 ‘100년 후 세계’라는 주제의 당대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2000년대 모습을 그린 작품들 속에 하늘을 날며 영업하고 있는 택시를 상상했고, 하늘을 날며 불을 끄는 소방관을 그렸다. 지금 이 같은 일이 실현되고 있다. 앞으로 3년 내외면 ‘드론 비행’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신기술로 만들어진 스마트 상품의 출현이 가능한 이유는 원천지식을 찾아냈던 기초과학자들의 연구 산물이다. 제1차 산업혁명 하면 제임스 와트(1736∼1819)의 증기기관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것은 와트의 증기기관이 등장한 뒤에야 비로소 각종 산업이 요구하는 여러 가지 기계화 작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20세 청년 와트는 글래스고대학에서 실험기기를 수리해 주던 기능공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연구용 실험 기구나 기계를 제작·수리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가 증기기관을 처음 발명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와트 이전에도 많은 혁신가들이 연구하고 이를 실용화하는 데 노력했다. 그중 알려진 사람이 토머스 뉴커먼(1663~1729)이다.

혁신기술은 원천기술 축적의 산물

뉴커먼에 의해 증기기관(뉴커먼 기관)이 비로소 산업에 접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턱없이 낮은 효율성이 문제였다. 와트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해 냈다. 기업가정신을 가진 청년 와트의 도전과 실패 과정의 열매로 높은 효율성을 갖춘 혁신제품 증기기관이 탄생했다. 와트는 영국의 특허 1호를 취득했고, 성과물에 대한 권리를 보호받아 부를 챙긴 최초의 특허권 소유자가 됐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특허권이 만료됐을 때 이를 의회가 주도적으로 앞장서서 연장해줬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영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기초과학 사업화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알고 가야 할 중요한 점이 있다. 뉴커먼 기관 전에 증기기관의 원천지식을 제공한 기초과학자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귀화한 물리학자 드니 파팽(1647~1715)이다. 당시 프랑스는 과학자를 영국만큼 대접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박해까지 했다. 그는 더 좋은 연구 환경을 찾아 영국으로 귀화했는데, 바로 이 과학자가 영국에서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했다. 물리학자인 파팽의 원천기술이 뉴커먼 기관의 작동원리에 적용된 것이다.

파팽의 원천지식으로부터 증기기관의 탄생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대략 90년은 족히 될 듯싶다. 이같이 기초과학으로부터 얻어진 새로운 원천지식과 기술이 실패와 도전이 거듭되는 혁신과정을 통해서 신제품으로 만들어진다. 파팽의 원천기술을 활용해 뉴커먼 기관을 만든 것도 많은 시간과 거듭되는 도전, 실패를 통해 탄생한 것이다. 뉴커먼 기관의 단점을 해결하고 비로소 효율적인 기관을 만든 와트의 증기기관 탄생까지도 대략 73년 이상 걸렸다. 현재의 기술 시각으로 보면 길어도 너무 긴 시간이다. 하늘을 나는 택시를 상상했던 1900년, 어느 화가의 기술 예측이 100년 조금 넘어서 드론으로 실현되는 걸 보면 인간의 능력이 무한대임을 실감한다.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투자 필요

새로운 원천기술을 만들어 내는 일은 과학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들 과학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원천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업화가 그것이다. 사업화와 실용화의 성공 여부는 와트처럼 기업가정신을 갖춘 혁신가에게 달려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한국이 선진 기술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제품 개발 기술도 중요하지만,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과학과 기술 간 조화로운 혁신 과정도 있어야 한다. 이에 동의한다면 이제는 그 실천을 의심 없이 믿어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수많은 실패가 동반되는 혁신 과정이 조만간 탄생될 사업화 결과물의 증거라고 믿으면서.

한정희 < 홍익대 스마트도시과학경영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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