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겨야 뜬다 …싼맛에 쑥쑥 크는 B급 과일시장

입력 2017-05-25 11:20

매일 아침 사과 1개를 챙겨먹는다는 직장인 문지은 씨(35·서울 신당동)는 지난달부터 대형마트에서 잘 포장된 사과를 사는 대신 온라인 쇼핑몰에서 '흠과'(외부에 생긴 흠 때문에 정품에서 탈락한 과일)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문씨는 "맛과 당도는 A급 제품과 차이가 없지만 단지 표면에 흠이 났다는 이유로 가격이 정상 과일보다 20~30% 저렴하다"며 "어차피 가정에서 먹는 용도로 사는 것이어서 굳이 예쁜 과일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못생겨서 선택받는 B급 과일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생과일을 먹고 싶어하는 수요가 증가하는 것과 더불어 싸고 맛있는 과일을 찾는 소비층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버려지거나 동물 사료로 썼던 B급 과일이 수확 기술의 발달로 유통할 수 있을 정도의 상품으로 거듭난다는 점도 B급 과일시장이 크는 이유다.

25일 온라인 전자상거래업체 옥션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B급 과일을 뜻하는 '못난이 과일' 매출 성장률은 연평균 약 60%였다.

올 들어 지난 22일까지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8% 늘었다. 사과(66%), 참외(720%), 배(59%), 단감(54%) 같은 겉이 딱딱한 속성을 갖고 있는 과일이 특히 성장률이 컸다.

임학진 옥션 식품팀장은 "못난이 과일이라고 해도 일반 상품과 맛이나 영양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며 "상품보다는 맛과 가격에 집중하는 합리적인 소비자가 늘면서 못난이 과일이 뜨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대형마트의 B급 과일 행사에서도 소비자들의 호응이 뜨겁다. 이마트는 지난해 가을 태풍 '차바' 영향으로 피해를 입은 낙과를 따로 모아 정상 과일보다 20% 싸게 판매하는 행사를 열었다. 당시 이마트가 준비한 물량 전체가 조기에 소진됐다.

롯데마트에서도 정상 제품에서 탈락한 과일들을 따로 모아 싸게 파는 '못난이 과일 대전'을 비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실속을 따지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못난이 과일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있다"며 "딸기 등 일부 과일은 모양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행사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못난이 과일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생과일 주스 전문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들은 주로 가락시장 등에서 주스용으로 나오는 못생긴 과일을 대량 구입하는데 일반 소비자까지 구매 경쟁이 붙으면서 물량을 구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주스 전문점 쥬씨 관계자는 "사전 계약으로 못난이 과일을 대량 구매하는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중소 업체들은 과일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며 "B급 과일 몸값이 비싸지자 이들만을 전문적으로 가져가는 도매상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비료로 쓰거나 동물 사료용으로 판매하던 못난이 과일이 수확 기술의 발달로 상품 가치를 얻게 된 것도 이 시장이 활발해지는 이유로 꼽힌다.

경기도 파주에서 포도농장을 운영하는 이상현 씨(54)는 "최근에는 유대(열매에 봉지를 씌우는 것)를 하거나 생장조정제 등으로 낙과를 방지한다"며 "선진국에서 재배하고 수확하는 방법을 많이 배워오기 때문에 아예 쓸 수 없는 열매의 양이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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