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섭/좌동욱 기자 ]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금융투자업계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가 특정 기업의 주주로서 이행해야 할 사항들을 권고한 모범 규준을 말한다.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뿐 아니라 경영진과의 대화, 이사 후보 추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주식 보유와 의결권 행사에 한정하지 않고, 기업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내에 도입된 건 지난해 12월이다. 5개월가량 지났지만 공식적으로 참여를 결정한 기관투자가는 아직 없다. 하지만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후보들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공약을 내걸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우선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사실상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국민연금이 참여를 결정한 만큼 국민연금의 돈을 받아 대신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도 잇따라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해선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찬성 측은 기관투자가가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기업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금융투자업계는 최근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급격하게 상승한 배경을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움직임에서 찾기도 한다. 반면 반대 측에선 기관투자가의 지나친 의사 결정 참여가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 경영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찬성 - 국내기관 주총안건 반대 1% 불과…지배구조 개선 위해 제 역할해야
기관 주주권행사 제한하는 제도 손질을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현재 일본 말레이시아 등 12개국이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기관투자가 연합인 ISG(Investor Stewardship Group)도 도입 의사를 밝혔다.
한국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건 다른 나라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 여러 금융회사들이 산업자본에 속한 탓에 자금을 맡긴 고객과 이해상충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산업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금융회사도 기업의 자금 조달과 운용을 지원하다 보면 ‘을’의 관계에 놓이기 일쑤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의 눈치를 보게 된 배경이다.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조차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관한 의결권을 행사할 때 외부 영향을 받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이해상충 문제와 선관의무 불이행은 의결권 행사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주주총회 안건 반대 비율은 1% 안팎에 불과하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8% 안팎의 반대율을 보이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계속 기계적으로 주총 안건에 찬성만 한다면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는 개선되기 힘들다.
지난 수십 년간 국내 상장기업의 경영은 지배주주 가족이 주도했다. 창업주들의 기업가정신과 능력이 기업 발전과 국가 경제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창업세대가 물러나고 승계 과정에서 이뤄진 사익 추구 행위들은 국내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유가증권 저가 발행, 목적이 불분명한 계열사 간 합병 등은 오너 가족의 사익을 위해 소수주주의 재산권이 침해된 대표적인 사례다.
나쁜 기업지배 구조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국내 상장기업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10배 내외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 상장기업의 PER은 20배를 넘고, 동남아 국가도 15배에 달한다. 국내 기업의 PER이 15배로 상승하면 국내 증시의 시가총액이 650조원 이상 늘어난다.
자금을 외부에 위탁운용할 때 의결권도 함께 맡기면 국민연금이 처한 ‘어항속의 고래’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을 ‘경영 참여행위’로 해석해 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제도도 전향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코드 이행의 대상이 되는 기업의 변화도 중요하다. 국내 기업의 지배 주주는 외부 주주에 의한 경영 감시를 극도로 싫어한다. 상장기업의 94%가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임 가능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도입된 ‘집중투표제(cumulative voting)’를 정관에서 배제한 것이 그 증거다. 선진국의 경우 경영자들은 이사회를 통해 끊임없이 견제를 받고 심지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의해 경영권이 바뀌기도 한다.
기관투자가의 주주 행동주의는 이미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연기금이 기업 경영에 목소리를 높이면 연금 가입자인 근로자의 목소리가 커진다는 우려 역시 선진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몸을 사리는 사이 국내 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이런 문제도 점차 해결될 것이다.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는 개선되고 자본시장도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반대 - 기관 목표는 투자자 이익극대화…경영관여는 자율 판단에 맡겨야
공적연금은 정치적 영향력에 노출될 우려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며 투자한 회사의 경영에 관여하도록 하기 위해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즉 스튜어드십 코드가 작년 말 도입됐다. 새 정부 들어서는 이를 강화하고자 한다.
스튜어드(청지기)란 주인(위탁인)이 맡긴 재산을 주인의 뜻에 따라 관리해야 하는 수탁인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업 경영에 적극 관여하라는 것이 기관투자가에 돈을 맡긴 위탁자의 뜻인지, 그렇게 하는 것이 위탁자에게 항상 이득이 되는지 의문이다.
헤지펀드와 뮤추얼펀드, 연기금 등과 같은 기관투자가들은 각각 자신들만의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어 이익 극대화 방법 및 투자 전략 등이 모두 다르다. 경영 참여에 대한 인센티브 역시 다르다.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며 경영에 관여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신속하게 주식을 팔아버리는 것 중 어떤 것이 위탁자에게 가장 이득인지는 기관투자가마다 다르다. 수많은 회사에 투자하고 있는 기관투자가가 일일이 개별 회사의 경영 상황을 파악하고 관여해야 할 경우 상당한 비용이 수반된다. 이것은 결국 위탁자의 부담이 될 텐데 이때도 경영에 관여하는 것이 수탁자인 기관투자가의 책무인지 의문이다.
코드를 우리보다 먼저 도입한 영국 등에서도 기관투자가들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해 실효성은 크지 않으면서 기업과 기관투자가들에 부담만 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코드는 기관투자가들이 자발적으로 따르는 ‘모범’ 규준이므로 강제성은 없다. 그러나 ‘모범’을 따르지 않는 행위는 어느 순간 비정상적 행위로 인식돼 결국에는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코드 준수 대상이 국민연금인 경우에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 다른 기관투자가와 달리 국민연금은 ‘공공기관’인 동시에 ‘전 국민 당연 가입 원칙’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입을 철회하고 다른 기관투자가에 투자할 수 없어 국민연금은 투자자들의 가입 선택이라는 경쟁 압력에 노출되지 않는다. 가입자와 국민연금 간의 대리인 문제가 위탁자와 일반 기관투자가들 간의 대리인 문제보다 심각할 수 있다. 또한 공적연금이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가 정치적 영향력에 노출될 수 있어 가입자 이익이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코드가 활용될 수도 있다.
코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받던 주식시장의 단기 실적주의를 개선하기 위해 영국에서 처음 도입되기 시작했다. 기관투자가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경영에 관여하도록 해 단기주의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드가 오히려 헤지펀드와 같은 투기자본의 경영 개입만 부추겨 단기주의를 더욱 악화시키고 기업의 장기 성장동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주주들의 단기주의가 문제라면 주식을 장기 보유하고 있는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주식 도입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2014년에 도입했다.
단기주의를 통제해 장기적 기업 가치를 제고하자는 코드의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코드가 오히려 단기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와 차등의결권주식을 도입해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는 주장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또한 국민연금의 특수성을 고려해 볼 때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 경영에 관여하도록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김우섭/좌동욱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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