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사람들
고교 때까지 스노보드 선수, 졸업 하자마자 이태원 바텐더…스물다섯 지금은 허브 농장주인
디자이너 관두고 동생 따라 농부로…자매의 향긋한 도전
[ 강진규 기자 ]
2012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박가영 씨는 바텐더가 되기로 결심했다. 칵테일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아예 진로를 그쪽으로 정했다. 그가 가장 좋아한 칵테일은 ‘모히토 가서 몰디브 마신다’는 그 모히토였다.
서울 이태원 인근의 한 칵테일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아침 매장에 배송된 허브 꾸러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믿을 만한 곳에서 주문했는데도 품질이 엉망이었다. 모히토 재료로 쓰이는 민트의 상태가 더 심각했다. “배송과정에서 허브가 많이 상한 것 같더라고요. 이런 민트로 모히토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선 취미삼아 15평짜리 미니 텃밭을 꾸미고 허브를 심어봤어요. 그런데 그 텃밭이 점점 커지더니 제법 큰 농장이 되더라고요.”
지난달 경기 수원시 이목동에 있는 농부 5년차인 박씨의 허브 농장을 찾았다.
▶바텐더에서 허브 농부가 됐는데 답답하니까 직접 하겠다는 거였나.
“비슷하다. 허브는 딴 후 1~2주면 시든다.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품질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내가 직접 민트를 재배해서 유통단계 없이 바로 식당에 가져다 주면 품질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농장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수원 이목동에만 1000평(3305㎡) 정도의 농장이 있다. 지난해부터 경기 화성에 새로운 농장을 꾸리고 있다. 작년 말 하우스 한 동을 지었고, 이달 초에는 추가로 하우스 한 곳을 임차했다. 총 규모는 2000평이다. 주로 민트를 재배한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대중성이 있는 게 민트다. 그 외에는 로즈메리, 레몬버베나, 바질, 라벤더, 파인애플세이지 등 다양하다. 올해는 꽃을 좀 많이 심었다. 한련화를 비롯해 먹을 수 있는 꽃들이다. 작년부터 디자이너인 언니가 합류해 아버지, 어머니, 언니 그리고 아는 언니까지 총 5명이 일한다.”
▶허브를 화훼도매시장에서도 판매하나.
“우리 농장의 가장 큰 특징은 도매시장에 상품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매시장에 물건을 내놓으면 유통 단계를 줄이기 어렵다. 허브의 생명은 신선도인데 여러 단계를 거치면 신선한 허브를 팔기 어렵다. 또 도매시장은 가격변동이 너무 심하다. 1만원은 받아야 되는 게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린다든지 하는 날이 있으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돈을 못 번다.”
▶그럼 어떻게 판매하나.
“직거래한다. 주문을 받으면 배송하는 날 아침에 수확해 작은 트럭을 타고 오후에 배송한다. 경기권이 아닌 곳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택배로 보낸다. ”
▶농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알파인 스노보드 선수였다. 선수 경력을 살려 체육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부상도 당하고, 몸이 안 좋아져 포기했다. 그리고 바텐더가 됐다. 그때 배송 온 허브만 신선했어도 그냥 바텐더를 계속했을 것 같다.”
▶허브 농사를 희망하는 젊은 귀농인에게 해줄 조언은.
“재배도 중요하지만 판로가 더 중요하다. 취미로 작게 해보고 괜찮다 싶으면 규모를 조금씩 늘리는 식으로 접근해보면 어떨까 싶다.” (총 3200자 분량으로 지면 사정상 줄여 싣습니다)
수원=FARM 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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