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 대통령…나폴레옹 이후 가장 젊어
경제장관 때 친(親)시장정책으로 주목
[ 이상은 기자 ]
한국 대선이 치러지기 이틀 전, 프랑스도 대선 결선투표를 통해 새 대통령을 뽑았다. 극우 포퓰리스트로 꼽혔던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를 제치고 제25대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신생정당 앙마르슈(En Marche·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39). 1977년 12월생이다. 프랑스에서도 나폴레옹 이후 가장 젊은 지도자로 꼽힌다. 한국에서라면 대통령을 꿈꾸기에는 ‘너무 젊다’고 할 나이지만 그는 30대 중반에 벌써 프랑스 경제장관을 지낸 엘리트다. 오는 14일부터 5년 임기를 시작한다.
고용·해고 절차 단순화…야간 영업 규제도 완화
프랑스 북부 아미앵 출신인 그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파리 낭테르대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시앙스포에서 공공부문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위공무원으로 가는 길로 꼽히는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다. 이후 재무부 금융조사관으로 일하다가 투자은행(IB) 로스차일드로 이직해 민간 금융을 경험해 보기도 했다.
2006~2009년 사회당원이기는 했지만 정치 경험이 없던 그를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대통령이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했다. 이어 2014년에는 경제장관(경제·산업·디지털부문 총괄)에 앉혔다. 마크롱은 2016년까지 경제장관으로 일하며 이른바 ‘마크롱법’으로 불린 친(親)시장 정책을 밀어붙였다.
주 35시간으로 규정된 근무제를 완화했다. 2000년 사회당 정부가 도입한 이 근로제가 일자리 나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업률을 높이고 1인당 고용비용을 높여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 국제관광지구로 지정된 지역 백화점 등 상가가 일요일이나 야간에도 영업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풀었다. 고용과 해고 관련 절차를 단순화했다.
의원 한 명도 없는 신생정당 소속
이번 프랑스 대선은 독특했다. 극우 르펜과 중도우파 마크롱, 극좌로 분류되는 라 프랑스 앙수미(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소속 장 뤽 멜랑숑 등이 접전을 벌였다. 공화당 소속 프랑수아 피용 후보가 한때 선두를 달리기도 했으나 개인비리 의혹으로 후위로 처졌다. 사회당 소속 후보는 일찌감치 5위권으로 밀려났다.
프랑스는 두 번 투표를 치른다. 1차 투표에서 상위 2명만 결선에 진출한다. 떨어진 사회당·공화당 후보가 그를 지지한 덕분에 마크롱은 65% 높은 지지율로 당선됐다. 서로 의견이 같아서라기보다 유럽연합(EU) 탈퇴(Frexit·프렉시트)까지 무람없이 거론하는 르펜의 당선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그를 밀어올렸다. 마크롱은 경제적으로 자유주의와 프랑스의 개혁을, 정치적으로 EU 친화적인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앞길이 만만치는 않다. 가장 큰 난관은 그가 국회에 단 한 명의 의원도 내지 않은 신생정당 소속이라는 점이다. 지난 8일 ‘라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로 이름을 바꾼 이 정당은 오는 6월 두 번에 걸쳐 총선을 치른다. 이때 소속 의원을 대거 의회로 진출시키지 않으면 사회당·공화당 등 기성정당들과 손잡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만큼 추진력이 떨어지고 각종 타협의 여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
24세 연상 유부녀에 프러포즈해 성사
한편 그는 아내와의 로맨스로도 유명하다. 아미앵의 예수회 학교 10학년(고교 시절) 때 프랑스어와 연극 담당교사 브리지트 트로뉴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매주 금요일 만나서 극본을 함께 썼다. 그는 15세, 트로뉴는 24세 연상의 유부녀였고 자녀들도 있었다. 하지만 저돌적인 마크롱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부모의 반대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고교 마지막 학년을 파리에서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트로뉴와 떨어져야 했는데, 가면서 “반드시 돌아와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돌아와서 동거하다가 전 남편과 이혼한 트로뉴와 2007년 결혼했다. 그는 트로뉴의 세 자녀의 계부가 됐는데, 자녀 가운데 둘은 그보다 나이가 많다.
트로뉴는 마크롱의 정치적 조언자이며 유세에도 적극적으로 동행했다. 2015년 교단을 떠난 그는 대통령 부인으로서 교육개혁과 청년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미국의 미셸 오바마 여사(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처럼 적극적으로 자기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