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2) 프로타고라스

입력 2017-05-15 09:00
"인간은 만물의 척도"···사람따라 진리도 달라진다
보편적 진리 보다 상대주의를 주장한 '소피스트'



TV 토론에서 어떤 토론자를 보면 말은 맞는 것 같은데, 소위 ‘말발’이 좋지 않아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말발 센 상대에게 밀리는 안타까운 광경을 목격할 때가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에서 말의 능력과 관련하여 두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이 옳다고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고, 다음으로 말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2500여 년 전 직접 민주주의를 실시했던 아테네에서도 동일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민주주의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는 위대한 통치자로 알려진 페리클레스에 의해 귀족 정치가 민주정치로 바뀌었다. 민주정으로의 변화는 시민들에게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불러일으켰다. 시민들은 여자와 노예를 제외한 아테네의 성년 남자로 제한되었다. 법을 만들거나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시민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투표로 결정했다. 이러한 사회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아테네에서 명문 귀족 출신은 별 의미가 없게 되고 오히려 말을 잘하는 능력이 출세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민주적 방식에서는 더 많은 지지자를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힘이 되기 때문이다.

아테네에서 출세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제압할 수 있는 웅변술과 수사학이라는 스펙을 갖추어야 했다. 이러한 스펙은 비단 정치 권력을 얻는 데만 유용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누군가에게 소송을 당하게 되면 당사자가 배심원들 앞에서 자신을 직접 변호해야 했다. 법정에서 배심원 설득 여부에 따라 똑같은 행위가 불법도 되고 합법도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도 설득하는 능력이 필요하였다.

소피스트 수요가 넘치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법. 교육 수요는 급증했고 이에 따라 그리스 각처에서 ‘전문 지식인’들이 아테네로 모여들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필요에 부응해 등장한 사람들이 바로 소피스트이다. 이들은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논쟁이나 소송에서 승리하는 데 필요한 웅변술을 가르치고 때로는 연설문을 써주는 대가로 부와 유명세를 누렸다.

프로타고라스는 소피스트 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철학사상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유명한 주장에 잘 드러나 있다. 이 말의 뜻은 인간 개개인이 진리의 기준이라는 의미다. 그는 소피스트답게 논리적으로 그의 생각을 전개하였다. 그의 추론을 따라가 보자. 외부 사물에 대한 지식은 인간의 감각을 거치지 않고는 파악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제 날씨를 가지고 설명해 보자. 날씨의 춥고 따뜻한 것의 기준은 날씨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감각 상태가 춥고 따뜻함을 결정한다. 그런데 그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예컨대 “서울은 봄이다. 제주도에서 온 방문객은 날씨가 춥다고 한다. 하지만 몽골에서 온 방문객은 날씨가 따뜻하다고 한다. 두 사람 다 진리를 말하고 있다. 진리는 관점에 좌우되므로 상대적이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논리다. 이를 통해 프로타고라스는 보편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상대주의적 진리관을 내세우고 있다.

아테네의 이단아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주장 아래 제기한 진리에 대한 프로타고라스의 상대주의적 견해는 철학에서 몇 가지 의의를 가진다. 우선 인간을 철학의 중심에 둠으로써 철학의 논의에서 신화를 제외하는 전통을 지속시켰고, 다음으로 철학의 주제를 자연의 근원을 탐구하는 분야에서 인간의 삶을 탐구하는 분야로 옮겼다는 점이다.

그러나 프로타고라스의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 입장은 아테네 현실에서 인간으로서 따라야 할 보편적인 기준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윤리적 회의론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었다. 그의 상대주의적 사고 속에는 진리의 존재 문제로 고민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즉, “세상에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진실한 논쟁 여부가 아니라 논쟁에서 이김으로써 현실에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다. 거기에는 도덕성에 관한 고려가 들어 있지 않다. 보편적 도덕성을 기반으로 공동체가 성립한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상대주의를 주장한 프로타고라스를 포함하여 소피스트 중 아테네 출신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