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개국 불러 '신실크로드' 과시한 시진핑…'트럼프 리더십' 흔든다

입력 2017-05-14 20:01
수정 2017-05-15 07:34
'일대일로 포럼' 베이징서 열려

푸틴 등 29개국 정상 참석
시진핑 "모든 참여국과 우호 협력"

인프라 건설 등 투자 본격화…1000억위안 기금 추가로 조성
30여개국과 무역협정 체결하기로
중국 패권 견제…G7 중 이탈리아만 참여


[ 베이징=김동윤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판 마셜플랜’으로 불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리더십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14일 베이징에서 1박2일 일정으로 개막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서다.

시 주석은 이날 개막연설을 통해 “1000억위안(약 16조3600억원)의 일대일로 기금을 추가로 조성해 주변 국가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호주의와 자국우선주의 노선을 표방하자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국 정상 등 고위급 1500여 명 참석

시 주석은 지난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처음으로 일대일로 포럼을 제안했다. 다보스포럼 개막 연설에서 “보호주의는 스스로를 어두운 방 안에 가두는 것과 같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주의 노선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중국이 세계화의 수호자가 될 것임을 자처했다.

일대일로 포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29개국 정상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기구 수장 등 130여 개국의 고위 인사 1500여 명이 참석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참석자 면면을 전하며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국제사회가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자평했다.

45분간 이어진 개막연설에서 시 주석은 중국이 국제사회를 이끌어나가겠다는 자신감을 숨김없이 표출했다. 그는 “인류 사회는 큰 변화와 조정의 시대를 맞았고 도전이 빈발하는 시대에 놓여 있다”며 “일대일로를 통해 평화, 번영, 개방, 창신, 문명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1000억위안 규모의 일대일로 기금을 추가로 조성해 주변국을 지원할 것”이라며 “이번 포럼 기간에 30여 개국과 무역협정을 맺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일대일로 건설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와 우호 협력을 하고 싶다”며 “이미 많은 나라와 일대일로와 관련한 실무 협력을 체결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2014년 말 400억달러(약 45조1600억원) 규모의 일대일로 기금을 조성했다.


◆중국 중심 경제공동체 건설 야심

일대일로 구상은 시 주석이 취임 첫해인 2013년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자리에서 처음 제기했고, 2015년 3월 보아오포럼에서 세부안을 공개했다. 고대 중국이 서역 국가들과 교역하면서 형성한 실크로드를 재현하겠다는 것으로 ‘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축 구상으로도 불린다.

주요 내용은 △교통·에너지 인프라 건설 △역내 자유무역지구 확대 △지역 내 통화스와프와 위안화 결제 확대 등이다. 중국은 시 주석이 일대일로 구상을 제창한 이후 관련 지역 투자를 본격화했다. 일대일로 관련 지역에 대한 중국 기업의 직접 투자는 작년까지 500억달러(약 56조2500억원)에 달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100여 개 국가와 국제기관이 일대일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중국은 일대일로 관련 지역 내 40여 개 국가와 양해각서(MOU) 및 업무협정을 맺었다. 파키스탄의 항구 과다르와 북쪽의 중국 국경선 사이를 개발하는 ‘경제회랑’이 진행 중이며, 중국~러시아~몽골 경제회랑 건설 계획 요강도 채택했다. 신(新)유라시아 대륙교를 구성할 철도 건설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중국 영향력 확대 견제하는 서구

중국이 일대일로 구상을 통해 다양한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주변국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등의 분야에서 중국 내 공급 과잉 부담을 해소하는 동시에 고속철 원자력발전 등의 해외 진출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또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유럽과의 연계를 강화함으로써 2000년대 초반부터 추진해온 중국 중서부 내륙지역 개발을 가속화하고, 이들 지역을 거점으로 위안화 국제화를 촉진하겠다는 포석이다.

중국이 처음 일대일로 구상을 공개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은 ‘중국판 마셜플랜’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경계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유럽 부흥 계획인 마셜플랜을 계기로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확고히 한 것을 중국이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포럼에 주요 7개국(G7) 중 이탈리아를 제외한 6개국 정상이 불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 덕분에 시 주석의 일대일로 구상이 뜻밖의 활력을 얻고 있다”고 평가했다. 산쥔리 미국 코넬대 교수도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경제적 지도국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미국의 보호주의가 남긴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