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의 리더십] 정리해고·한미 FTA…DJ·노무현, 국익 위해 이념도 고집도 접었다

입력 2017-05-10 18:57
수정 2017-05-11 05:19
(4) 현실·시장 중시한 대통령이 역사적 성과 냈다

노동계 반대 무릅쓰고 결단
외환위기로 강제된 시장 개방
DJ "나라 전체 부도낼 순 없다"
IMF의 노동유연성 요구 수용

"대통령은 달라야" 국익 우선
노무현, 진보측 지지세력 반발에도 친미 행보 이어가며 FTA 추진
"개방만이 살길" 뚝심으로 관철


[ 황정수 기자 ]
“한국의 노동 유연성을 높일 수 있습니까?”

김대중(DJ) 전 대통령 당선 나흘째인 1997년 12월22일. 미국 대통령 특사로 방한한 데이비드 립턴 미국 재무부 차관이 DJ를 찾았다. 립턴 차관은 한국과 국제통화기금(IMF) 간 구제금융 협상을 조종하던 ‘막후 실력자’였다. 물밑에서 한국 정부에 정리해고제 즉각 도입을 요구하고 있었던 립턴 차관은 DJ에게 노동 유연성 관련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의 새 대통령이 노동계와 가깝다는 세간의 평가를 확인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사실 DJ는 대선 때 ‘정리해고제 도입 2년 유예’를 약속했다. 하지만 DJ의 이날 답변은 공약과 달랐다. “노동자를 해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를 실천하겠습니다.” 무표정했던 립턴 차관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이틀 뒤인 24일, 미국을 포함한 13개 선진국과 IMF는 ‘100억달러 조기 지원’이란 선물꾸러미를 한국에 안겨줬다.

대통령들은 국정 운영 과정에서 수차례 신념을 시험받았다. 공약을 뒤집고 지지세력을 등져야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마주한 대통령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정파 대표로서의 고집을 꺾고 합리적인 대안을 택한 대통령들은 결국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이념이 아니라 ‘현실’, 교과서가 아니라 ‘시장’을 선택한 결과다.


◆“실업자 구하려고 나라 부도낼 수 없다”

신념을 꺾은 대통령의 고통은 컸다. DJ도 립턴 차관과 만나기 전날, 잠을 못 잘 정도로 고심했다. DJ가 결단을 내릴 때 기준은 하나였다. 오로지 ‘국익’이었다. 그는 회고록에 “몇십만명의 실업자를 구하려다 4000만명이 살고 있는 나라 전체가 부도를 맞을 수는 없었다”고 썼다.

‘노동 유연성’을 전면에 내세운 DJ의 개혁은 이어졌다. DJ는 1998년 공기업 노동조합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1개 공기업의 민영화를 밀어붙였다. 임기 말까지 8개 공기업의 민영화가 완료됐다. DJ는 “정말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고 싫은 소리, 모진 소리도 많이 했다”며 “개혁을 통해 나라의 체질을 바꿨고 IMF 체제에서도 희망을 품고 벗어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친미 비판에 “현실 직시하라”

DJ의 뒤를 이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원칙을 강조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유연성을 버리지 않았다. 지지세력의 거센 반발에도 이념과 고집을 잠시 접어두고 철저히 ‘국익’만 생각한 결과다. 대표적인 게 ‘한·미 관계’다. 노 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한·미 관계에 공을 들였다. 2003년 1월17일 당선인 신분의 노 전 대통령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를 찾았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좌파이면서 반미 대통령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암참에서 우려가 나왔다”며 “한·미 간 원만한 관계를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친미 행보는 이어졌다. 지지세력의 불만은 2003년 3월 이라크 파병에서 폭발했다.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줘야 하는 것인가’란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럴 때마다 “현실을 직시하라”며 어르고 달랬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남북문제나 동북아시아 문제를 풀기 위해선 친미도 하고 친북도 하고 친중, 친소, 친일도 다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당시를 되돌아봤다.

이념 대신 국익을 선택한 노 전 대통령의 뚝심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란 역사적 성과를 냈다. ‘개방의 폐해는 IMF 체제 때 증명되지 않았느냐’는 진보 진영의 공격에도 노 전 대통령은 특유의 화법으로 방어했다. 그는 “나도 야당일 땐 안줏거리처럼 비판하던 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었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반대했다”며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고 타일렀다.

◆공약 뒤집고 ‘개방’ 선택한 YS

황소고집으로 알려진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세계화와 관련해선 고집을 꺾었다. 그는 집권 첫해, 공약이었던 ‘쌀 시장 개방 반대’를 포기했다. 우루과이라운드(UR) 파고로 국제무역질서의 조류가 ‘개방’으로 향하고 있어 쌀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청와대 비서관을 맡았던 한 인사는 “김 전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 이후 그 동력으로 세계화를 추진했고 세계화는 YS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고 말했다.

함성득 한국대통령학연구소장은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지도자의 역할과 리더십을 적절하게 발휘하지 못한 대통령은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명령자가 아니라 조정자인 대통령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고 지적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