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심기 건드린 죄?…미국 FBI 국장, 끝내 경질

입력 2017-05-10 17:46
러시아 스캔들 수사로 불화
임기 절반도 못 채우고 쫓겨나


[ 이상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오후(현지시간) 트럼프 정부의 러시아 내통 여부를 수사하던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사진)을 전격 해임했다. 민주당 등은 즉각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스캔들 대응 방식과 마찬가지라며 반발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의 건의를 받아 이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코미 국장에게 즉각 해고를 통보했다. 코미 국장의 임기는 원래 2023년까지다. 그는 10년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TV 뉴스로 해임 사실을 알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 보도 후 FBI본부에 도착한 해고 통지서에서 “(코미 국장이) 내가 (러시아 스캔들의)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해준 점을 매우 높이 평가하지만 FBI를 효과적으로 이끌 수 없다는 법무부의 판단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코미 국장은 지난해 미국 대선 선거인단 투표를 불과 11일 앞두고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재수사 방침을 공개했다. 이로 인해 당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선거에서 막판 탄력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취임 초기 그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후 ‘원칙주의자’ 코미 국장이 칼끝을 트럼프 대통령 자신에게 겨누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외신들은 코미 국장이 지난 3월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트럼프 정부의 러시아 스캔들에 의혹이 있으며,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의 도청 증거는 아직 없다는 불리한 증언을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 대한 생각을 바꿨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세션스 법무장관이 적어도 지난주부터 ‘코미를 내쫓을 사유를 찾아내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표면적인 해고 사유는 코미 국장의 수사 관련 의회 진술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FBI는 이날 상원 법사위원회에 코미 국장이 클린턴의 최측근이던 후마 애버딘이 전 남편에게 기밀을 포함한 수백, 수천 건의 이메일을 규칙적으로 포워딩했다는 것은 잘못된 발언이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이메일 전송은 개인 전자기기 백업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었고 수동으로 포워딩한 이메일은 몇 개 없었다는 것이다. 4만9000개 이메일 중 애버딘이 포워딩한 기밀 이메일은 2건에 불과했다고 FBI는 덧붙였다.

민주당 및 언론들은 코미 국장 경질이 닉슨 전 대통령이 1973년 10월20일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수사하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고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지휘할 특별검사 지명을 요구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공화당 소속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코미 국장 해임 결정에 실망했다”며 “코미 국장은 명예롭고 진실한 사람으로 FBI 조직을 잘 이끌어왔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