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대 대통령 문재인은 누구 … '노무현 그림자'에서 재수 끝 '대선 승리' 주역

입력 2017-05-10 06:23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6·25전쟁 중이던 1953년 1월24일 경남 거제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1950년 12월 흥남 철수 작전 당시 고향을 떠나 월남해 경남 거제 피란민수용소에서 정착했다.

어려서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문 대통령은 2011년 펴낸 자서전《운명》에서 “가능하면 혼자서 해결하는 것, 힘들게 보여도 일단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부딪혀 보는 것, 이런 자세가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가난이 내게 준 선물이다”라고 썼다.

경남중·고교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문제아'였다.

재수 끝에 1972년 경희대 법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공부보단 유신 반대 시위를 이끄는 데 앞장섰다.



부인인 김정숙 여사가 최루탄에 맞은 문 대통령을 수건으로 닦아준 일화는 유명하다.

1975년 4월 인혁당 관계자들이 사형당한 다음날 대규모 유신 독재 화형식을 주도해 서대문구치소에 4개월 동안 수감됐다. 장남에게 실망한 부친은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구속돼 대학교에서 제적되고 강제 징집당했다. 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에 배치돼 31개월의 군 생활을 마쳤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입대였지만 그의 특전사 군대 경력은 안보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방패막이가 됐다.

제대 후 시위 및 구속 전력으로 복학의 길은 막혀 있었고 취업도 힘들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 문 대통령은 사법고시 공부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 “뒤늦게나마 한 번이라도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아들로서의 결심”이었다고 했다. 선친의 49재를 마친 다음날 전남 해남 대흥사에 들어가 고시공부에 몰입했다. 누우면 잠이 올까봐 방에 물을 뿌리며 공부에 전념했다. 이듬해인 1979년 1차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학내 시위와 공부를 병행하던 문 대통령은 1980년 ‘서울의 봄’ 시위에 나섰다가 계엄령 위반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결국 경찰서 유치장에서 2차 시험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사법연수원 시절에 7년 연애한 같은 대학 성악과 2년 후배인 김정숙 여사와 결혼했다. 대학 축제에서 만난 김 여사는 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감옥, 군대, 대흥사 등을 찾아 다녔다. 김 여사는 “나를 자유롭게 해줄 것 같아서 재인씨와 결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82년 부산으로 내려와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운명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 노 전 대통령과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시국사건을 맡았다. 그 인연으로 2002년 당시 노무현 대선후보의 부산선거대책본부장직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노 전 대통령 당선 후 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비서실장을 맡으며 대표적인 ‘친노(친노무현)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엔 대리인단 간사 변호인을 맡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발음이 다소 부정확해진 것도 이때 격무와 스트레스로 치아 10개가 빠졌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치러진 제18대 대선에서 역대 야권 후보 최다 득표인 1469만표(득표율 48%)를 얻었지만 진영 대결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51.6%를 얻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이후 네 차례 당 순회 경선에서 ‘대세론’을 지속한 문 대통령은 지난달 3일 총 5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대학 입학과 사법시험 모두 재수로 합격하며 자신을 재수에 강하다고 소개하며 두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선 문재인.



41.1%의 지지율로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국민들에게 다짐했다.

김정숙 여사와의 사이에는 아들 문준용 씨와 딸 문다혜 씨를 두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경남 양산 자택과 건물등을 포함해 18억 6402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