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출신에 빗장 건 '공정위 최고 심판정'

입력 2017-05-09 18:16
기업 문제 다루는데…
전원회의 非상임위원 기업인 출신 '전무'
외부 추천·검증 없이 임명…"전문성 떨어진다" 평가도

공정위 문호 개방해야
프랑스는 비상임위원 25%…다양한 업종의 기업인 출신
공정위도 각계 추천 받아 다양성·전문성 확보해야


[ 황정수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 출범 이후 기업인 출신 비상임위원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거래법에 ‘경력 15년 이상 기업경영자’는 비상임위원 자격이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공정위는 기업인에 장벽을 쳤다. 일부러 기업 출신 인사를 들이는 선진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기업 문제를 다루는 공정위에서 재계 출신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은 ‘비합리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외부 검증 없이 입맛대로 추천

9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 출범 이후 비상임위원에 기업인이 임명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비상임위원은 공정위 ‘최종 의사결정 합의체’인 전원회의 멤버로 총 4명이다. 공정거래위원장 등 상임위원 5명과 함께 기업의 법 위반 여부와 검찰 고발, 과징금 부과 등 제재 수준을 결정한다. 비상임위원은 공정거래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공정거래법 37조를 보면 비상임위원 자격 요건엔 고위공무원 출신, 법조인, 대학교수와 함께 기업인도 포함된다.

공정위가 유독 기업인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기업의 불공정거래 사건을 조사하는 업무 특성으로 생긴 ‘불신’ 때문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공정위는 지난 1월 인사혁신처가 개방형 직위인 송무담당관(과장)에 삼성 사내변호사 출신을 1순위로 추천하자 위원장이 직접 나서 무산시키기도 했다.

비상임위원 후보를 외부의 추천이나 검증 없이 공정위 내부에서 선정해 올리는 ‘밀실’ 구조가 장벽을 높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인사를 담당하는 운영지원과가 민간인 전문가 풀을 갖고 있다”며 “이 중 복수의 후보를 선정해 윗선에 보고하면 위원장이 최종 후보를 대통령에게 제청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비상임위원 외부 추천위원회 같은 기구는 없다”고 덧붙였다.

외부 검증 없이 공정위 내부 결정으로 추천한 인사가 임명되다보니 특정 직종 출신 인사가 계속 비상임위원을 물려받는 사례가 잦다. 지난달에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김상준 변호사가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인 이한주 비상임위원으로부터 직을 물려받았다. 공정위 퇴직관료 출신도 마찬가지다. 2012년 3월 공정위 국장 출신인 서석희 변호사가 비상임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서 변호사의 임기 만료 후엔 공정위 국장 출신인 이재구 숭실대 법대 교수가 뒤를 이었다.

수준 이하 비상임위원

공정위 일부에선 기업인은 ‘공정거래 관련 전문성’이 떨어져서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정위가 추천한 비상임위원 중엔 공정거래분야 연구실적이 없는 교수도 있었다. 검찰 역할을 하는 공정위 사무처에서도 특정 비상임위원에 대해 “사건 이해도가 너무 떨어져 걱정”이란 평판이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위원들은 심판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통해 전원회의의 격을 낮추고 있다. 중간에 말을 끊고 면박을 주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예컨대 지난해 6월 세종 심판정에서 열린 ‘6개 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관련 전원회의에서 A비상임위원은 은행 법무대리인들에게 “물어본 것에만 답해라”, “누가 말하라고 했냐”는 식의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B위원은 억울함을 토로하는 기업 관계자에게 “지금 그런 걸 말하라고 한 게 아니지 않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기업인에게 문 연 선진국 공정위

선진국은 좀 다르다. 공정위와 비슷한 조직 구조를 갖춘 프랑스 경쟁당국은 기업인에게 문호를 열어 두고 있다.

공정위 전원회의 역할을 하는 프랑스 경쟁위원회의 위원은 상임 5명(위원장 1명, 부위원장 4명)과 비상임 12명으로 구성된다.

비상임위원 중 한 명은 광고 대행사, 생활정보 포털사이트 대표 등을 맡았던 기업인이고 2명은 글로벌 광학기업 에실로 등에서 법무 담당 임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기업 경영에 밝은 전문가를 위원으로 기용해 심결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공정위의 전문성과 균형성, 공정성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이 전원회의에 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가 일부 추천권을 갖고 나머지를 산업계, 학계 등에 넘기는 방안이 거론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5인의 추천권은 한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대한상공회의소, 은행연합회가 나눠 갖고 있다.

공정위는 비상임위원 외부 추천에 반대한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국회 지명에 대해선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와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전원회의가 ‘정치’에 휘둘릴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방통위 사례를 볼 때 ‘국회 추천’은 합리적인 방안이 아닌 것 같다”며 “전원회의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있다면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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