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 대폭락에 베팅한 영국 기업
가능성 낮은 50센트짜리 상품에
누적 투자금만 1억2000만달러
[ 이상은 기자 ] 배우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빅쇼트’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앞두고 시장이 대폭락할 가능성에 돈을 건 투자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금융위기 이후 9년 이상이 넘게 흘렀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경제는 비교적 개선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있다. 언젠가는 다시 시장이 고꾸라질 수 있다는 비관론자들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미국 증시가 대폭락할 가능성에 꾸준히 돈을 걸고 있는 한 미스터리 투자자의 이야기를 지난 5일 소개했다.
이 투자자는 지속적으로 일정 시기에 변동성지수(VIX)가 20을 넘어갈 경우 이 지수를 미리 정한 가격에 매입할 권리(콜옵션)를 갖는 ‘50센트(약 568원)’짜리 파생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공포지수’라는 별명을 가진 VIX가 20을 넘어가려면 미국 증시가 급락하고 위험 회피 심리가 극대화돼야 한다.
이런 일은 드물다. 2016년 이후엔 단 세 번만 일어났다. 해당 파생계약의 가격이 50센트에 불과한 것은 그만큼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다. 계약 1단위당 가격은 50센트지만, 총 계약 규모는 이보다 크기 때문에 이 투자자가 지금까지 쓴 돈은 1억2000만달러(약 1360억원)에 이른다. 홀로 50센트짜리 계약을 계속 맺는 미스터리 투자자에게 월가는 ‘50센트’라는 별명도 붙여줬다.
FT는 여러 은행 트레이딩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이 투자자가 미국계가 아니라 영국 런던 버킹엄궁 인근 투자회사인 러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영국 국교회 등의 자산 200억달러(약 22조7000억원)가량을 굴리고 있는 러퍼는 FT의 확인에 응하지 않았다. 그동안 러퍼가 사들인 1억2000만달러어치 옵션 프리미엄 가운데 8800만달러어치는 기한 만료로 소멸됐다고 FT는 전했다.
FT는 다른 투자자도 폭락에 대비해 VIX 콜옵션을 사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시스템적으로 같은 가격을 계속 제시해서 주목받은 경우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