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그루벨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명예교수
1990~2009년 캐나다 소득조사
하위 20%의 87% 계층상승
'가난과 부는 세습' 명제 틀려
현금성 복지 공약은 포퓰리즘
[ 심성미 기자 ]
“한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 박힌 ‘흙수저·금수저론’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부의 계층은 언제나 이동합니다.”
오는 7~10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리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모임 ‘몽펠르랭소사이어티(MPS) 서울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허버트 그루벨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명예교수(83·사진)는 지난 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루벨 교수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꼽힌다. 캐나다의 이민정책과 상속세 인하의 경제적 효과, 기업 규제 완화 등을 연구해왔다. 1993년 캐나다 개혁당 소속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최근 한국 사회에 퍼져 있는 소득 불평등 현상에 대한 냉소적 분위기와 대선후보의 경제 공약 등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수저계급론은 위험한 발상”
그루벨 교수는 요즘 한국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된 ‘수저계급론’(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富)가 사회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자조적인 신조어)을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소득 불평등 문제와 함께 계급 간 이동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세계 곳곳에서 제기되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시계열로 전체 국민의 소득을 조사해보면 한국의 수저계급론은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90~2009년 캐나다 전체 인구의 소득을 시계열로 추적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1990년 소득 하위 20%에 속한 캐나다인 중 2009년 같은 그룹에 속한 사람은 13%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며 “나머지 87%는 19년간 소득이 늘어나 상위 그룹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반면 1990년 당시 소득 상위 20%에 포함된 이들 중 36%는 2009년 하위 그룹으로 내려갔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난과 부는 세습된다’는 명제는 틀린 셈이다. 그루벨 교수는 “한 국가 내의 소득 격차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현미경을 들고 들여다보면 특정 소득 계층에 있는 이들은 늘 ‘다른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경쟁적 복지공약 무책임”
이번 MPS 서울총회 일정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와 겹친다. 그루벨 교수에게 대선후보들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아동·노인수당 확대 공약과 기본소득 도입 등 주요 복지 공약을 설명하자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대선후보들은 일단 표를 많이 끌어올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며 “재정 확보 문제나 복지 확대 이후의 여파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 ‘오늘만 사는 이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루벨 교수는 “현금성 복지를 확대하기보단 복지정책에 기대려는 이들이 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100달러를 벌던 사람에게 실업급여 50달러를 주면 일하려 하지 않는다”며 “이들이 노동시장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정책을 펼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경제적 자유 장애물은 ‘규제’
MPS 서울총회의 주제는 ‘경제적 자유:번영으로 가는 길’이다. 그루벨 교수는 “경제적 자유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정부 규제”라고 일갈했다.
그는 “캐나다에선 은행이 연간 벌어들이는 수익의 25%가 각종 금융규제나 환경규제, 이를 처리해야 할 변호사 비용까지 포함해 정부 규제에 대응하는 데 쓰인다”며 “3%대 경제성장률에 다시 진입하기 위해선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 역시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그루벨 교수는
허버트 그루벨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명예교수는 지금까지 28권의 저서를 내고 200개가 넘는 글을 전문 경제 학술지에 기고한 경제학자다.
1972년부터 27년간 사이먼프레이저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경제학자이면서 정치인이기도 하다. 1993~1997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개혁당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캐나다의 대표적인 시장경제주의자다. 상속세 인하의 경제적 효과 등 세금 개혁, 캐나다의 이민 정책 등을 연구해왔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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