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자손 '명예'보다 가난이란 '멍에' 사무쳤던 유년…"
[ 박동휘/구은서 기자 ]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56·사진)은 철저한 ‘마이너리티(소수자)’ 출신이다. 독립유공자 집안 자손이란 ‘명예’는 가난이란 ‘멍에’로 그의 유년을 지배했다. 배움도 사치였다. 얼마나 사무쳤는지 “개천에서 용 나오게 하는 게 평생 신념”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경남 남해군 산골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부산교육대 총장이 될 때까지 경남 일대에서 주로 생활했다. 지난해 교총 회장에 당선되면서 처음 전국 무대에 섰다. ‘기호 4번 하윤수’를 주인공으로 만든 선거도 ‘드라마’ 같았다. 교사 자격증 없는 비(非)서울 출신이 18만 교원 대표로 뽑힌 건 70년 교총 역사상 처음이다.
진주 음식을 고른 건 그에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 회장은 “서부경남권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곳이 진주”라고 했다. 남해로 연결되는 바다에 지리산, 섬진강까지 끼고 있어 물산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서부경남의 거점이자 문화도시인 진주는 그에게 ‘로망’이기도 했다. 지독한 가난 탓에 교방(敎坊)음식으로도 불리던 고급스러운 진주 음식을 맛보기란 언감생심이었다. 진주에 있는 국립 경상대에 합격했으나 학비가 없어 포기했다.
멍에가 된 ‘독립운동가 후손’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이 한창이던 작년 11월 교총은 예상 밖의 성명을 냈다.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명기한 것은 독립운동의 의미를 깎아내린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부와 대립각을 잘 세우지 않던 교총으로선 이례적인 행보였다. 교육계에선 “하윤수라면 그럴 만하다”는 말이 나왔다. 독립유공자 후손인 하 회장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였다.
하 회장 조부는 진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다 3년간 옥고를 치렀다. 훗날 공을 인정받아 건국훈장애족장을 받았다. 독립운동가 자손으로서 하 회장의 삶은 험난하기만 했다. “부친은 할아버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총에 맞았어요. 평생을 불구로 사셨습니다.” 9남매 건사는 모친 몫이었다. 손에서 일을 놓을 새가 없었다. 하 회장을 낳은 곳도 외양간이었다. 그 시절의 험난함을 농 반 진 반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1년 늦은 아홉 살에 국민학교에 들어갔어요. 입고 갈 아랫도리가 없어서였습니다. 상상이 안 되죠?” 도시락을 처음 싸 간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해 소년 하윤수의 집에 처음 전기가 들어왔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등교하면 싸움만 했다. “먹을 게 없으니 어떡해요. 도시락 싸온 친구들 윽박질러서 빼앗아 먹어야죠. 요즘 같았으면 아마 소년원 들어가고도 남았을 겁니다.” 학교를 마치면 산으로 들로 지게 지고 일하러 가야 했다. 책은 그에게 사치였다.
회상에 젖느라 앞에 놓인 음식이 식어갔다. “육전이나 한 점 들고 하시죠.” 하 회장 말에 젓가락을 들었다. 질 좋은 소고기를 얇게 저며 달걀에 적셔 구워냈는데 진주식 냉면에 싸 먹어도 좋고, 제철 나물과 곁들여도 그만이다. 그의 진주 음식 예찬이 이어졌다. “예부터 진주엔 없는 게 없었어요. 삼천포에서 해산물 나지, 지리산은 신선한 산채 내놓지, 농토가 넓어 쌀과 고기도 풍부했습니다.” 진주 육회비빔밥이 전주비빔밥 못지않다고 평가받는 배경이다. 북쪽에 함흥·평양냉면이 있다면 남쪽엔 진주냉면이 있다고 할 정도라고 했다.
교육법 전문가로 교총과 인연 맺어
젊은 시절엔 인권 변호사가 꿈이었다고 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구제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재수 끝에 부산 경성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인생항로는 뜻밖의 여정을 밟는다. “기초가 없는데 사법시험이 가당키나 했겠어요. 특히 영어가 안 됩디다. 맘 접고 동아대 석·박사 과정에 들어가면서 법학교수로서 교직의 길에 들어서게 됐지요.”
부산교대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박사과정 시절 전세금을 빼내는 결단을 내려 일본 오사카대에 객원연구원으로 간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당시 정수봉 동아대 총장이 하 회장 5촌 당숙과 동문수학한 사이라 일본 유학 추천서를 써줬다. 일본을 오가면서 전공도 민법에서 교육법으로 바꿨다. “1995년께였는데 그 시절만 해도 교육법 체계가 제대로 안 잡혀 있었어요. 일본엔 교육법론이라는 책이 서점에 여러 권 꽂혀 있었는데 말이죠. 우리 실정에 맞는 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1997년 《교육과 법률》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이 하윤수와 교총을 맺어 준 연결고리가 됐다. 교총에서 《교원과 법률》이라는 책을 만들자는 제안이 왔다. 교육 기본3법을 제정할 때도 교총의 요청에 그가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특별 메뉴로 바닷장어구이가 나왔다. 본래 진주는 남강에서 잡히는 민물장어구이로 유명한데 요즘은 씨가 말라 맛보기 어렵다. 대신 남해군의 대표 먹거리인 바닷장어가 하모가 자랑하는 요리 중 하나다. 자연산으로 치면 민물장어에 밀릴 수밖에 없겠지만 흔하디흔한 양식 민물장어와 비교하면 훨씬 낫다. 담백한 맛에 쉽게 질리지 않고, 입안에서 부드럽게 부서지는 식감이 입맛을 자극한다.
교육, 망해야 산다…교육감 직선제로 교육 황폐화
그의 인생노정을 듣고 있자니 어떻게 교총 회장까지 됐나 신기할 정도였다. 온갖 불리함을 하 회장은 특유의 친밀함으로 극복했다. 이름을 부르면서 눈을 맞춘 채 힘껏 악수하는 그를 만나면 누구나 호감을 갖게 된다. 불과 몇십 표 차이지만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교총 회장으로 당선된 비결이다.
대선을 앞두고 하 회장은 밤낮없이 뛰어다닌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이 엉망이 되고 있다는 안타까움에서다. “교육이 이래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대한민국 교육은 망해야 삽니다. 정권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는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로는 살릴 수가 없어요.” 그는 현 상황을 피리에 비유했다. “소리가 잘 안 난다고 제멋대로 구멍을 뚫어요. 그러다 이번엔 다른 사람이 기왕의 소리구멍이 문제라며 막습니다. 이러니 피리가 제소리를 낼 수 있겠어요?”
대선후보들의 교육 공약에도 맹공을 퍼부었다. “교육부를 해체한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국가교육개혁위원회에서 여야가 힘을 합쳐서 해야 할 일을 정하고 교육부는 집행 역할을 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교육감직선제를 이대로 놔둔 채 교육부를 무력화시켜선 안 돼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교육부 폐지가 주요 교육 공약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교육부가 가진 초·중등 교육 관련 권한을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교육감에게 더 이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하 회장은 교육감직선제가 교육 현장을 황폐화시킨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선거로 뽑힌 교육감에게 뭐가 제일 중요하겠어요. 표(票)예요. 한 줌밖에 안 되는 교사들은 득표에 별 도움이 안 되니, 오로지 학부모만 눈에 들어올 겁니다. 대부분 정책이 학부모가 원하는 것뿐입니다. 일선 교원 사기가 추락해 공교육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교총은 교육감 출마 자격을 현재 ‘교육경력 3년 이상’에서 ‘10년 이상’으로 늘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은퇴 후 하 회장의 꿈은 마을교육공동체를 설립하는 것이다. “교육은 나눔이에요. 교육이 희망 사다리가 돼야 저 같은 촌놈도 꿈을 꿀 수 있지 않겠어요? 마을공동체에서 이뤄보고 싶습니다.”
창립 70돌 맞은 교총…18만명 가입 최대 교원단체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사 18만여명이 가입한 국내 최대 교원단체다. 1947년 11월23일 교사 100여명이 서울 덕수초등학교에 모여 교육 발전을 위해 설립한 대한교육연합회에서 출발했다. 교육기본법 제15조와 민법 제32조에 설립 근거를 두고 있다.
교사의 전문성 향상, 교권 보호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게 목표다. 교총은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아 ‘가르칠 맛 나는 학교! 선생님이 행복해집니다’를 슬로건으로 정하고 학교 현장과의 소통과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 대학 교원이면 교총에 가입할 수 있다.
하윤수 회장의 단골집 하모 육회 비빔밥·육전…'정갈한 맛' 진주 향토음식 전문점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2012년 7월 문을 연 하모는 ‘변함없이 믿을 수 있는 맛’을 내세운 진주 향토음식 전문점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아무렴 그렇지’라는 뜻의 가게 이름처럼 믿음직한 맛을 내기 위해 재료부터 정성을 쏟는다. 경기 파주 농장에서 요리에 쓸 콩을 재배해 메주를 띄우고 간장과 된장을 직접 담근다. 박경주 대표는 틈만 나면 진주에 내려가 전통시장을 돌면서 새로운 레시피를 연구한다.
하모는 모던한 인테리어와 깔끔한 음식 맛으로 외국인 입맛도 사로잡았다. 2017 미슐랭가이드 서울판에서 ‘1스타’를 받았다.
대표 메뉴는 소고기 육회를 얹은 ‘진주비빔밥’(1만2000원)과 육전, 조선잡채, 석쇠불고기를 곁들인 ‘하모 반상’(2만7000원)이다. 계절마다 한정 메뉴로 제철반상도 마련한다. 요즘은 바지락 냉이를 들깨된장소스에 무치고 주꾸미와 봄나물을 담아낸 ‘봄 제철반상’이 인기다.
정갈한 음식 맛으로 소문이 나 정치인과 대기업 임원 등 단골이 많다. 진주 출신 LG그룹 관계자들이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휘/구은서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