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책 모순 지적
엘 에리언 알리안츠 경제자문
"트럼프, 약달러 선호하지만 국경조정세는 강달러 초래"
감세 옹호하는 므누신
"법인세는 기업 크기 아닌 사업 자체에 대한 세금 감세 혜택 70% 근로자 몫"
[ 뉴욕=이심기 기자 ]
1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는 4명의 현직 미국 장관들이 참석했다. 투자포럼인데도 이례적으로 고위직이 대거 ‘출동’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00일 성과를 홍보하면서 정책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겠다는 포석으로 투자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주가 상승, 고맙게 생각해야”
이날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개막 세션에,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오찬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레인 차오 교통부 장관과 벳시 디보스 교육부 장관은 각각 인프라(사회간접자본) 투자와 교육 분야 세션에 패널로 나왔다.
므누신 장관은 청중석의 월가 투자대가들을 향해 “규제 완화로 은행 주가가 오르지 않았느냐”며 “트럼프 정부에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는 뼈있는 농담이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3%대 경제성장에 도달하려면 2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제개편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면 대대적인 규제 완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므누신 장관은 법인세를 15% 단일세율로 한 이유에 대해 “법인세는 사업(비즈니스)에 매기는 세금이지 기업 자체에 부과하는 세금이 아니다”며 “기업의 크기에 따라 세율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감세효과의 70% 이상은 근로자에게 돌아간다”며 “세제개편안은 고용법안의 다른 버전”이라고 강조했다.
로스 장관은 “경제성장률이 2~2.5%에 그친다면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라며 경제 회복에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공화, 민주 양당이 내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세제개편안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투자대가들 “역효과 날 수도”
투자대가들과 이코노미스트들은 트럼프 정부 장관들의 자화자찬성 발언을 반박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자문은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이 모순을 초래하면서 퍼즐이 맞지 않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弱)달러를 선호하지만 보호무역주의와 국경조정세가 강(强)달러를 초래할 수 있으며,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도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럽이 성장궤도에 오르면서 미국과 함께 간다면 문제가 안되지만, 유럽이 뒤처지면 달러 강세의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엘에리언은 이어 “정책 발표만으로는 영원히 주식시장을 부양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상 최고치 수준인 증시와 달리 국내총생산(GDP), 소매 판매, 인플레이션율 등 지표가 소프트 패치(일시적 경기하강)에 놓여 있는 모순적 상황에서 어떻게 낙관적으로만 볼 수 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스콧 마이너드 구겐하임파트너스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CIO)도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이 이행돼야 할 때가 됐다”며 “아무런 결과가 없다면 시장은 정부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공동 최고운영책임자(COO) 역시 “트럼프 정부 초반의 강력했던 낙관주의가 점차 옅어지고 있다”며 “세제와 규제개혁에 대한 확신도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규제·높은 세율이 문제”
월가를 대표하는 인물인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은 미국이 직면한 고질적 병폐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는 “교량 하나를 짓는 허가를 받는 데만 10년이 걸린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미국이냐”고 반문한 뒤 “가장 두려운 것은 나쁜 정책”이라며 규제와 높은 세율을 꼽았다.
다이먼 회장은 “과거에 비해 중소기업 수가 감소한 이유는 규제가 너무 많고 자본에 대한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법인세율이 너무 높아 매일 자본과 두뇌가 해외로 빠져나간다”며 “미국보다 외국 회사가 미국 기업을 인수하기가 더 쉽다”고 비판했다.
■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미국 밀컨연구소가 1988년부터 매년 4월 말~5월 초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여는 투자자 포럼이다. ‘미국판 다보스포럼’으로도 불린다. 밀컨연구소는 1980년대‘정크본드의 제왕’으로 통하던 마이클 밀컨이 인류의 삶을 개선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기 위해 1991년 설립한 비영리기구다.
로스앤젤레스=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