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적 경제관이 한국 정치 지배
선진국일수록 대기업 경제 비중 높아
대기업 적대시하면 경제 번영 불가능
5만달러 되려면 걸맞은 지식 갖춰야
정규재 논설고문 jkj@hankyung.com
정의당의 심상정 대통령 후보가 근로자의 기업 이익 균점권을 요구하는 것은 일응 정의당의 노선에 부합한다. 그것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정의당에는 국부(國富) 창출에 대해서건, 근로자 복지에 대해서건 그다지 기대하는 것이 없다. 시장경제를 착취 제도로 이해한다면 이익균점권은 꽤 그럴듯한 치료제로 보일 것이다. 종업원 지주제를 통한 알량한 배당보다는 원천이익의 균점이 소위 ‘근본 대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중세 천동설과 다를 바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게 과학의 출발이다. 시장을 장사치들의 불의한 교환 과정으로 보면 불가피하게 시장 철폐를 정치의 목표로 할 수밖에 없다.
근로자 이익균점권은 6월 항쟁의 결과인 1987년 헌법 개정 당시에도 논란이었다. 그러나 기원은 제헌 헌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익균점이라는 단어는 제헌 헌법 초안 작성자인 유진오의 제안에 따라 헌법에 삽입됐지만, 다행히 심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기업 이익이 위험 선택에 대한 대가요, 그것에 대한 보상과 징벌 과정을 통해 문명이 진보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본과 노동의 대가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수 없다. 유진오는 기업은 국영기업을 기본으로 봤고, 무역도 민간무역을 원칙상 불허하는 국가독점 무역 체제를 상정했다. 민간무역은 곧 밀(密)무역인 줄 알았고 민간 대기업이라고는 본 적이 없었던 식민지 지식인의 한계였다고 할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권 일각에서 당시의 기업관을 고집하는 것은 지적 게으름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통령 당선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경제관이다. 문 후보의 공약과 민주당의 그동안 입법활동은 대기업과 자본가를 적대시하는 전근대적 경제관이다. 이런 경제관으로는 나라 경제의 앞날을 기대할 수 없다. 정부 지원에 기대어 살아가는 영세기업으로 가득찬 골목길의 비명소리만 더욱 비참하게 터져나올 뿐이다. 올바른 경제분석 없이 올바른 경제대책, 다시 말해 보통의 근로자들이 잘살고, 국가 복지는 서민에게 집중되며, 기업들은 새로운 좋은 물건과 서비스로 세계에서 뛰고, 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의 소질에 걸맞은 일자리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그런 경제를 절대 만들 수 없다.
지금 문 후보가 내세우는 경제민주화는 제헌 헌법 당시의 소규모 식민지 경제를 재현하자는 시대착오적 정치투쟁에 불과하다. 대기업을 적대시하는 기업관부터가 그렇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이 너무 많은 게 아니라 대기업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기업 수 99%, 근로자 비중 88%라는 소위 ‘9988론’은 중소기업의 중요성이 아니라 고통과 빈약함을 상징할 뿐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문 후보는 깨달아야 한다.
한국에서 25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대기업은 전체 기업의 0.2%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서 일하는 종업원 수는 전체 근로자의 19.9%다. 일본은 기업 수 0.6%에 종업원 수 25.8%다. 일본도 그다지 높은 비율은 아니다. 독일의 대기업 수는 전체 기업의 2.1%, 고용은 52.9%로 껑충 뛰어 오른다. 독일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대기업에서 일한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근로자의 40% 이상이 대기업에서 근무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9명 이하 영세업체 수가 비정상적으로 많다. 전체 기업의 81.1%가 9명 이하 사업장이며, 이들 영세업체에서 허덕이며 일하는 근로자 수는 전체의 24.2%다. 일본은 이 수치가 14%, 독일은 6.7%에 불과하다. 이 차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아, 한국에는 대기업이 너무 적다! 그것이 과도한 자영업, 골목에서 터지는 비명소리,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의 실체다. 이 사실을 모르고 또 중소기업·골목상권 보호와 대기업 규제를 떠들고 있으니 이 나라 대졸 청년들이 번듯한 직장을 기대하기란 앞으로도 하늘의 별따기일 것이다. 국민소득 5만달러로 가려면 그것에 걸맞은 경제지식이 필요하다.
정규재 논설고문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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