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서 증권부기자 cosmos@hankyung.com
[ 박종서 기자 ]
“지적을 받고 확인해 봤는데 정말 비슷하네요. 문구가 조금 다른 덕분에 법안이 접수된 것 같습니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의외로 밝았다. 머쓱해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운이 좋았다’는 반응이었다.
지난주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모 의원의 비서관은 기자와 통화에서 다소 들떠있었다. 개정안이 정무위원회에서 심사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개정안에는 기업이 사업보고서를 공시할 때 △사회공헌 활동 내역 △내부신고자 고발 대책 △직원 복리후생 등에 대한 설명을 의무적으로 넣으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제는 이 법안이 작년 8월 홍일표 바른정당 의원이 발의해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심의 중인 법안과 비슷하다는 데 있다. 홍 의원도 당시 △인권보호 계획 △내부신고자 보호대책 △육아휴직 등 복리후생 관련 사항 등을 사업보고서에 넣을 것을 명시했다. 한 달 뒤에는 이언주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더 황당한 것은 비슷한 법안이 이미 2010년과 2013년에도 발의됐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폐기됐다는 데 있다. ‘일란성 쌍둥이’ 같은 법안이 수차례 발의됐고, 폐기된 상황에서 전 의원이 굳이 개정안을 낸 이유는 뭘까. 일단 발의했던 의원들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동료 의원실에 전화 한 통만 했어도, 국회 의원정보시스템을 5분만 검색했어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힘들다.
두 번째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전 의원이 비슷한 법안이 제출된 사실을 알면서도 발의했을 가능성이다. 시민단체 등이 의원 성과를 평가할 때 법안 발의 건수를 중요한 잣대로 삼다 보니 ‘붕어빵 법안’을 발의해서라도 ‘건수’를 올리려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다른 의원실 보좌관에게 의원입법에 대해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법안 내용은 둘째다. 일단 많이 발의해서 건수를 올리는 게 중요하다. 동일한 법안이 심사 중이더라도 발의하는 데 성공하면 ‘무지의 소치’가 아니라 ‘의외의 성과’로 인정받는다. 이게 국회의 현실이다.”
박종서 증권부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