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핑크빛 와인 한 모금…파스타가 춤추네

입력 2017-04-23 15:53
나보영의 걸어서 와인 속으로 -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로마냐 지방의 대표 와인 '콘체르토'
볼로네제 파스타의 풍부한 맛 살려줘
발사믹 식초 바른 아이스크림도 별미


이탈리아인들은 저마다 자기네 지역 와인과 요리가 최고라고 자부한다. 장화처럼 긴 국토 전역에서 와인이 생산되고, 저마다 특색 있는 요리도 탄생하기 때문이다. 중·북부의 에밀리아 로마냐(Emilia Romagna)지방은 그중에서도 자타 공인 으뜸으로 꼽힌다. 각종 음식이 풍부해 ‘푸드 밸리’라 불리는 곳이다. 이를 바탕으로 요리가 발달한 주도 볼로냐는 ‘이탈리아 요리의 수도’로 통한다. 대표적인 이탈리아 식재료들이 바로 에밀리아 로마냐의 도시들에서 왔다. 파르메산 치즈와 프로슈토는 파르마(Parma), 볼로네제 파스타는 볼로냐(Bologna), 발사믹 식초는 모데나(Modena)가 고향이다.

무엇보다 이 지방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건 약발포성의 레드 와인 람브루스코(Lambrusco)다. 람브루스코는 포도 품종 이름인 동시에 그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칭한다. 강한 레드 와인에서 기포가 피어나서 처음 접하는 사람은 낯설게 여기기 쉽다. 그러나 잘 만든 람브루스코를 접하게 되면 산미와 타닌을 감싸는 부드러운 기포에 반하고 만다. 특히 ‘메디치 에르메테(Medici Ermete)’의 와인이 세계적으로 명성 높다. 대표 와인 ‘콘체르토(Concerto)’는 고(故)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즐겨 마시던 것으로 유명하다. 닐 베케트가 쓴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 할 와인 1001’에는 “글라스에 따르면 드러나는 핑크빛 거품은 행복의 이미지 그 자체”라고 묘사했다. 저명한 푸드&와인 매체 ‘감베로 로소’에서는 최고 등급인 트레 비키에리(Tre Bicchieri)를 2010년부터 8년 연속으로 부여했다.

메디치 에르메테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알베르토 메디치 회장과 그의 가족이 손수 요리를 해줬다. 소박한 가정식이라고 그들은 말했지만 다양한 본토 요리가 식탁에 가득했다. 볼로네제 파스타, 프로슈토, 살라미, 에르바조네(Erbazzone, 시금치와 건포도를 넣고 구운 전통 파이) 등이었다. 모든 음식이 맛있었지만 특히 알베르토 회장의 모친이 만든 볼로네제 파스타에서 정성이 듬뿍 느껴졌다. 볼로네제 파스타는 다진 소고기, 토마토, 와인을 뭉근하게 끓인 라구(ragu) 소스로 만든다. 알베르토의 모친은 여기에 훈제 햄을 조금 넣고 이탈리아 고춧가루인 페퍼론치노(Peperoncin)도 살짝 뿌린다고 했다. ‘콘체르토’는 이 풍부한 맛의 파스타와 아주 잘 어울렸다. 신선한 산미는 기름기를 씻어주고, 부드러운 타닌은 소스와 어울리고, 고운 기포는 긴 여운을 선사했다. 협주곡이란 뜻의 그 이름처럼 다채로운 맛과 조화로운 향연을 벌였다.

후식으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알베르토는 거기에 발사믹 식초를 떨어뜨려서 먹어 보라고 했다. 메디치 에르메테 가족이 운영하는 테누타 람파타(Tenuta Rampata)에서 만든 것이었다. 트레비아노(trebbiano) 포도 품종을 20년 넘게 숙성시켜 만든 그 발사믹 식초는 꿀처럼 부드럽고 달았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떨어뜨려 먹으니 캐러멜같이 느껴졌다. “포도즙이 발효되면 와인이 되고, 거기서 더 발효되면 식초가 되죠. 포도가 열매로서, 와인으로서, 식초로서 늘 우리 식탁에 머무는 거예요.” 알베르토의 말처럼 포도는 우리 옆에서 여러 가지 깊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