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정부 국유화로 파탄난 베네수엘라…"가진 건 배고픔뿐"
'퍼주기식 복지'로 최악 경제난
생필품·식량 생산시설 국유화
1600%대 살인적 물가상승률
원자재 수입 끊겨 기업활동 위축
포드, 작년 자동차 공장 가동 중단
다국적 기업들 사업규모 축소
[ 추가영 기자 ]
극심한 경제난에 빠진 베네수엘라 좌파정부가 미국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의 현지 자산을 압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발렌시아시(市)에 있는 GM 공장과 공장에 보관하고 있던 완성차를 몰수했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GM 베네수엘라 법인은 정부의 몰수 조치 후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GM 측은 “2700여명 직원과 79개 딜러가 큰 피해를 보게 됐다”며 “불법적인 자산 압류에 대항하기 위해 모든 법적 수단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GM은 지난 35년간 베네수엘라 자동차 시장에서 1위를 지켜왔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GM 공장을 국유화해 직접 자동차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고(故)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석유산업을 국유화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차베스는 1999년 집권 후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표방하며 1400개 기업의 자산을 몰수했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좌파 정부의 국유화 정책을 계승한 니콜라스 마두로 좌파 정부는 지난해 7월 미국 개인 위생용품업체인 킴벌리클라크가 베네수엘라 현지 생산을 중단하자 생산시설을 몰수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마두로 정부의 외환 통제에 따른 원자재 부족과 소비 부진으로 침체를 겪고 있다. 또 다른 미국 자동차업체 포드는 지난해 12월 매출 부진을 이유로 발렌시아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브리지스톤, 제너럴밀스, 프록터앤드갬블(P&G) 등 다른 외국 기업도 현지사업 규모를 줄였다.
그러나 마두로 정부의 국유화 정책은 베네수엘라의 경제난을 가중시킬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외국인 투자가 감소하면서 정부의 주요 수입원인 석유 생산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란 전망이다.
◆포퓰리즘 독재가 드러낸 민낯
남미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1999년 차베스 전 대통령 집권 후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 ‘퍼주기식’ 복지정책을 펼쳤다. 수출의 90% 이상을 원유에 의존하고 식료품이나 의약품 등 생필품은 수입해 쓰는 구조가 굳어졌다. 경제체질 개선은 등한시했다.
국제 유가가 급락하자 베네수엘라 경제는 함께 추락하기 시작했다. 차베스 집권 말기 무리한 가격통제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경제성장률 하락과 다락 같은 인플레이션이 이어졌다.
식량 부족 현상은 차베스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도입한 생산시설 국유화 정책에서 비롯됐다. 그는 2004년 식품부를 신설한 뒤 농장과 공장을 국유화했다. 국가 주도의 식량 생산은 민간에 맡기는 것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졌다. 유가 폭락으로 정부 재정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생필품과 식량을 수입하기도 어려워졌다.
차베스의 뒤를 이어 마두로 대통령이 2013년 집권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 물가상승률이 166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민들 몸무게 평균 8㎏ 줄어
친(親)정부 성향의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별도로 지정한 기관이나 대법원 산하 헌법위원회에 의회 입법권을 맡기겠다’는 판결을 내렸다. 야당이 장악한 의회를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에 반발한 베네수엘라 국민은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다.
지난 7일 베네수엘라 감사원이 중도우파 성향의 차기 유력 대선후보인 엔리케 카프릴레스 미란다 주지사에게 15년간 공직선거 출마를 금지한 판결을 내리자 시위는 격렬해졌다. 최근 3주간 소요사태로 8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수백명이 투옥됐다.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한 베네수엘라 전역의 많은 빈민가 주민은 시위에 참가하려 해도 쉽지 않다. 주류 언론은 정부가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빈곤층은 시위가 언제, 어디서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베네수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마라카이보에 사는 알폰조 몰레로는 “가진 건 배고픔뿐”이라며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무슨 힘으로 시위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식량이 부족해 국민 체중이 줄어드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시몬볼리바르대가 6500가구를 대상으로 지난해 생활조건을 조사한 결과 가구 구성원 75%의 평균 몸무게가 8.62㎏ 줄어들었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이런 현상을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마두로 다이어트’라고 부른다. 현재 수입으로 필요한 음식을 조달할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93.3%에 달했다. 하루 세끼를 모두 챙겨 먹지 못한다는 응답자는 32.5%로 1년 새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