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박사의'그것이 알고 싶지?' (57)
'13세기 선진국' 중국을 17년간 둘러본 여행기
'후진문화' 유럽인들, 거짓이라며 믿지 않았죠
■ 기억해 주세요^^
마르코폴로가 죽기 직전 가톨릭 사제가 동방견문록에서 한 거짓말을 모두 철회하라’고 하자 그는 ‘제가 보고 겪은 것의 절반도 말하지 못했다’라고 답했다죠.
우주에는 지구 이외에 생명체가 살고 있는 별이 있을까? 미생물까지를 포함한다면, 답은 99.9% ‘네’다. 그렇다면, 인류 이외의 고등생명체가 살고 있는 별도 있을까?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2017년 2월23일자 네이처지에는 지구에서 39광년 떨어진 곳에서 지구와 비슷한 외계행성 7개가 발견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우주에 고등생명체가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언젠가 그들과 우리 인류가 만나게 될는지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과거사를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유추할 수는 있다.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을 둘러싼 당대의 논쟁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동방견문록》은 이탈리아의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1271년부터 1295년까지 동방을 여행한 체험담을 기록한 여행 보고서다. 베네치아 상인의 아들이었던 마르코 폴로는 15세에 이탈리아를 떠나 42세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1298년 베네치아 공화국과 제노아 공국 사이에 벌어진 해전에 참전했다 포로로 잡혀 감옥에 갇히는데, 약 3년의 수감 기간 동안 감방 동료였던 루스티첼로(Rustichello)에게 자신의 경험을 구술해 출간한 책이 《동방견문록》이다. 이것이 이 책의 출간 배경에 관한 가장 유력한 설이다.
지리 종교 생활 언어 등 묘사
책에 나오는 여정은 이탈리아-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호르무즈 해협-육로로 서아시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원(元)나라 도착, 쿠빌라이 칸(세조)을 알현하고 관직을 하사받은 뒤 17년간 중국 전역을 여행-남중국해 해로를 따라 수마트라 섬을 거쳐 호르무즈 해협-베네치아 귀환으로 이어진다.
《동방견문록》은 유럽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라는 평가를 받은 중세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동방견문록》이라는 번역 제목은 이 책이 인상적인 장면을 위주로 기록한 여행기라는 느낌을 준다. 실상은 다르다. 원제는 《세계의 서술(Divisament dou Monde)》이다. 폴로는 유럽인들이 가보지 않은 지역에 대한 총체적 정보를 담으려고 했다. 지리적 위치, 주민들의 종교 및 생활습관, 언어, 정치적 상황 등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낯선 괴담의 창작’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정확한 정보의 전달’이 구술의 목표였다는 뜻이다.
폴로는 구술 당시부터 자신의 책이 황당무계한 이야기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 듯하다. 그래서 책 곳곳에 ‘보지 않고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들어도 믿기 힘들 정도다’ ‘여러분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는 문구를 여러 차례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 증언은 아무런 거짓이 없는 올바르고 참된 것’이며 ‘직접 보거나 진실이라고 들은 갖가지 경이를 (내가 구술하고 루스티첼로가) 받아 적도록 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들을 알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도 커다란 죄악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훗날 지리상 발견에 큰 영향 끼쳐
《세계의 서술》에 열광하기는 했지만, 당대인들은 이 책을 ‘허구’ 혹은 ‘약간의 사실에 바탕한 상상’이라고 깎아 내렸다.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대여서 수많은 작가들이 마르코 폴로 원본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인 ‘임의 개정증보판’을 펴내기도 했다. 어차피 꾸며낸 이야기인데, 가필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괴한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재미’였을 뿐이다. 독자들도 폴로의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의 친구들조차 이 모든 이야기는 허풍선 폴로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임종 직전 가톨릭 사제가 ‘죄의 사함을 받기 위해 당신의 거짓말을 모두 철회하라’고 하자 폴로가 미소를 지으며 ‘아직 제가 보고 겪은 것의 절반도 말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폴로의 저작은 훗날 지리상의 발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기술의 발달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장거리 여행을 가능하게 했고, 여행자들의 증언이 《세계의 서술》에 나온 내용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13세기에 베네치아 공화국과 원나라가 동시에 존재하고 번영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당대에는 ‘모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거짓말’ 취급을 받았다. 어쩌면,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태도가 이와 비슷할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