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아 정치부 기자 mia@hankyung.com
[ 이미아 기자 ] "마음이 표밭에 가 있는데 바깥세상이 눈에 보이겠어요?”
‘5·9 장미 대선’을 22일 앞두고 외교·안보 전문가들에게 대선후보들의 대북정책과 외교노선에 대해 물었을 때,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무리 안보가 갑자기 핫한 테마로 떠올랐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대선후보 중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구체적인 복안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이러니컬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 틈에 끼어 항상 줄타기하듯 사는 지정학적 운명의 나라다. 게다가 이번엔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이 높다. 미국은 핵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한반도 인근 해역에 배치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아시아 첫 순방국으로 한국을 택했다. 북한은 지난 15일 ‘태양절’에 대규모 열병식을 하고, 펜스 부통령이 방한한 16일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미사일 발사를 시도했다. 중국과 일본도 미국과 ‘삼각 연락’을 하며 움직이고 있다.
대선후보들은 서로 “내가 안보 대통령”이라고 외치고 있다. 북한에 대한 규탄 성명을 앞다퉈 냈다.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던 일부 후보들도 “사드 배치는 피할 수 없다”며 이른바 ‘안보 우(右)클릭’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안보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언을 뒷받침할 공약은 보이지 않았다. 북핵 문제의 해법과 국방예산 증액 여부,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강대국들과의 결속 재강화 방안 등을 제시하는 후보들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 안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공약은 군 복무기간 단축, 병사 월급 인상 등이다. 다분히 젊은 층의 표심을 겨냥한 공약으로 비칠 뿐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대선후보라면 아무리 선언적 총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설사 공약(空約)으로 그칠지라도 외교·안보와 관련한 뚜렷한 장기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정권 교체 때마다 외교노선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해묵은 지적이 차기 정부에선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미아 정치부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