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맡던 기업 구조조정, 이젠 민간 PEF가 주도한다

입력 2017-04-13 18:53
정부, 자본시장에 '키' 넘겨

신용위험 평가 깐깐해져
부실기업 조기 발견 가능
신속한 구조조정 기대


[ 정지은/이태명 기자 ]
금융위원회가 13일 발표한 ‘신(新)기업구조조정 방안’은 기업구조조정의 ‘키’를 사모펀드(PEF) 같은 민간 자본시장에 넘기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동안 국내 기업구조조정은 정책금융기관이나 채권은행이 주도했다. 그러다 보니 채권은행마다 의견이 달라 기업구조조정 추진 방안을 합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정부와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안이 최대 사채권자인 국민연금공단의 반대로 진통을 겪는 게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올 하반기 기업구조조정 펀드가 조성되면 PEF가 은행에서 부실기업 채권을 인수해 경영 정상화를 꾀하는 사례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펀드는 국책은행 시중은행 유암코(연합자산관리) 연기금 등이 먼저 자금을 투입하면 민간 투자자가 매칭펀드 방식으로 출자한다. 이 자금을 받은 펀드 운용사는 부실기업의 채권 및 주식을 사들인다. 펀드 출자자들은 부실기업이 정상화되면 높은 가격에 팔고 이익을 나눈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PEF가 부실기업 채권을 적극 사들여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연내 1조원 규모를 펀드에 출자한다. 2021년까지 5년간 4조원까지 단계적으로 자금을 늘릴 계획이다. 시행 초기에는 적용 대상을 중견기업으로 삼기로 했다. 조단위 대기업의 구조조정은 현행대로 정책금융기관이 주도한다.

금융위는 부실기업의 채권 가격을 정하는 절차도 손보기로 했다. 그동안 은행(매도자)은 부실기업 채권을 더 비싼 가격에 팔고 싶어 하고, 매수자는 싼 가격에 사기를 원하는 등 이견이 커서 거래가 불발되는 일이 잦았다. 앞으로는 채권은행이나 다른 채권자, 매수 희망자가 신청하면 ‘금융채권자 조정위원회’가 부실기업 채권의 적정 가격을 산정한다.

이날 발표한 방안에는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를 활성화하는 부분도 담겼다. 이 방식이 정착하면 부실기업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신속히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런 방식이 국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에 비해 국내는 자본시장 규모가 작아서 PEF 주도는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국가 경제 차원의 정책적 고려 없이 부실기업이 정리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컨대 단기 차익을 노리는 PEF가 기업 가치를 단기간에 올리기 위해 대량 해고를 할 수도 있어서다.

정지은/이태명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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