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싱글시대' 딱 맞는 '24시간 만물상' 편의점

입력 2017-04-07 16:50
아침엔 카페· 점심엔 식당·심야엔 은행

NIE 포인트
일각에서 편의점의 심야 영업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근거는 무엇이며, 타당한 발상인가. 각자의 생각을 토론해 보자.


[ 임현우 기자 ] “연중무휴 24시간 영업하는 점포가 문을 열었다. 서울 올림픽기자촌의 프라자상가에 오픈한 국내 최초의 정통 편의점 ‘세븐일레븐’. 40여평 규모의 이 점포는 각종 식품류를 비롯해 품목마다 대표적인 1~2개 브랜드만 취급해 맞벌이 부부, 독신자 등을 겨냥하고 있다.”

1989년 5월7일자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연중무휴 철야영업 편의점 첫 오픈》이라는 기사다. 미국과 일본에서 앞서 발달한 편의점은 88서울올림픽 이후 국제화의 흐름 속에 한국에 상륙했다. 당시만 해도 소매점은 동네 슈퍼마켓 위주였다. 쾌적한 공간에서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은 신선하게 여겨졌고, 중산층이 많은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속속 확산했다.

불황 무풍지대 … 시장규모 20兆 돌파

28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3만개 넘는 편의점이 들어선 ‘편의점 천국’이다. 한국편의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편의점 수는 3만2611개, 연간 매출은 20조4000억원에 달했다. 5년 새 점포 수는 57%, 매출은 두 배로 뛰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온라인·모바일 쇼핑에 밀려 성장이 정체된 반면 편의점은 해마다 10~20%씩 커지고 있다.

고속 성장의 밑바탕에는 인구구조의 변화가 깔려 있다. 편의점의 팽창은 1인 가구 급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중은 1995년 12.7%에서 2015년 27.2%로 훌쩍 뛰었다. 싱글족의 소비 방식은 가족 단위 쇼핑객과 다르다. 대형마트보다는 출퇴근길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소포장·소용량 제품과 간단한 먹거리를 필요한 만큼 사는 경우가 많다.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다는 점도 편의점 수가 급증한 배경으로 꼽힌다. 편의점 창업은 대량 실직이 일어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크게 늘었고 2010년대 들어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의 은퇴와 맞물려 또 한 번 크게 늘었다.

식당·카페·우체국·은행… 편의점 속으로

편의점업계 ‘빅3’인 CU, GS25, 세븐일레븐의 차별화 경쟁 속에 취급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구색도 다양해졌다. 이들 업체는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다른 곳에선 살 수 없는 자체상표(PB) 제품을 늘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편의점의 매출 상위 품목은 담배, 술, 음료수 등이었지만 최근 PB(유통업체의 자체 개발 브랜드) 비중이 급등해 30% 선을 넘어섰다.

백종원, 김혜자, 혜리 등의 연예인을 내세운 도시락과 1000원짜리 원두커피, 아이스커피 등이 편의점의 간판 PB 상품이다. ‘편의점은 비싸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유명 브랜드보다 저렴한 PB 생수, 안주, 생리대 등도 내놨다. ‘요구르트 젤리’ ‘홍라면’ ‘동원참치라면’ 등은 편의점 전용상품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사례다.

편의점이 제공하는 부대서비스도 수십종으로 늘었다. 택배 발송·수령, 휴대폰 충전, 세금·공과금 납부는 기본이고 알뜰폰 판매, 꽃배달, 민원서류 발급, 사진 인화, 외국인 쇼핑객 대상 세금 환급, 체크카드 발급 등도 할 수 있게 됐다. 유흥가에서는 물품 보관함, 대학가에서는 미팅 룸을 운영하는 등 지역 특화 서비스도 선보였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편의점이 유통업을 넘어 금융·공공기능을 수행하는 사회복지 인프라가 되고 있다”고 했다.

‘24시간 사회’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편의점의 주력 품목은 시간대별로 달라진다. 오전엔 커피, 점심엔 도시락, 저녁엔 맥주와 소주가 잘 팔린다. 퇴근 무렵엔 택배를 찾는 사람이, 심야엔 의약품과 현금인출기를 찾는 사람이 몰린다.

전문가들은 편의점의 성장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 유통산업은 10년 정도의 격차를 두고 일본 유통산업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일본 편의점의 점포당 매출은 한국보다 네 배가량 높다. 평균 면적도 두 배 넓고, 상품 종류는 훨씬 세분화돼 있다.

주영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일각에서 국내 편의점이 포화상태라는 시각도 있지만 적어도 4~5년은 점포가 순증할 것”이라며 “6만여개인 슈퍼마켓 중 PB 구성 등에 강점을 지닌 편의점으로 전환하는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