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금리 역전 임박…연기금, 환헤지 비율 축소
미국금리 오르면서 헤지 비용↑
공무원연금, 올들어 해외주식 환헤지 비중 20%→0%로 축소
100% 환노출한 국민연금 해외주식·대체투자 수익률 높아
보험사들도 환노출 적극 검토
[ 이지훈 / 김대훈 기자 ] 기관투자가가 환헤지(환위험 회피)를 하지 않고 해외 자산을 사들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환헤지에 드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서다. 미국은 지난달에 이어 연말까지 두 번 더 기준금리를 올릴 계획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동결하면 10년 만에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 ‘환헤지 투자’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기관투자가뿐 아니라 개인도 자산운용 전략을 짤 때 환율 전망과 헤지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기관투자가의 국민연금 따라하기
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공무원연금은 올 들어 해외 주식 환헤지 비중을 기존 20%에서 0%로 낮췄다. 사학연금도 환헤지 비중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외 주식은 50%, 해외 채권은 100% 환헤지하는 기존 전략으로는 수익률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라는 설명이다. 지급여력(RBC) 비율 부담 탓에 환헤지를 원칙으로 삼는 보험사들도 환노출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기관투자가가 환헤지 전략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다. 환헤지는 환선물을 이용해 거래계약 당시 수준으로 환율을 고정시키는 기법이다. 투자 대상 국가의 금리가 올라가면 비용이 늘어난다.
지난해 미국 금리 상승 여파로 1년짜리 선물거래에 따른 환헤지 비용이 약 0.8%포인트 올랐다. 연 4.5%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의 실제 수익률이 연 3.9%까지 떨어졌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이 미국의 금리 인상 계획을 감안해 일찌감치 환노출로 전략을 수정한 이유다. 현재 해외 주식과 대체투자 상품을 사들일 때 아예 환헤지를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성과로 보면 국민연금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해외 주식에서 10.13%, 해외 대체투자 상품에서 12.34%의 수익률을 올리며 다른 기관투자가를 압도했다. 50% 환헤지 전략을 쓰는 사학연금과 비교하면 연간 수익률 격차가 3~4%포인트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환 전략이 수익률 차이를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환헤지 비용을 아낀 데다 투자 시점보다 달러 가치가 올라가면서 다른 기관과의 수익률 격차를 벌였다는 설명이다. 강형구 한양대 교수는 “과거 데이터를 보면 2008년 이후부터는 환헤지를 하지 않는 게 더 유리했다”며 “주식시장 변화에 따라 환율 전략을 탄력적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 대상 환노출형 상품도 봇물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보험사들도 환노출 전략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미래에셋생명 동부화재 현대해상 등이 일부 해외 자산에 한해 환노출로 전략을 바꿨다.
보험사는 환헤지를 하지 않으면 투자금액의 8%를 요구자본으로 쌓아야 해 부담이 크다. 하지만 환헤지 비용이 더 늘어나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환헤지 전략을 고수하는 보험사들의 투자 패턴도 과거와 다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달러 강세 여부와 상관없이 환헤지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헤지에 활용하는 선물환을 단기 상품으로 바꿨다. 환헤지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겠다는 의도다.
환율 전략이 중요한 것은 개인투자자도 마찬가지다. 최근 자산운용사들이 신상품을 출시할 때 환헤지와 환노출 상품을 함께 내놓고 있다.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 명칭에 ‘H’가 들어가면 환헤지 상품, 들어가지 않으면 환노출 상품이다. 다만 연간 환헤지 비용이 원금의 4~10%에 달하는 신흥국 연계상품은 환헤지 상품을 따로 두지 않는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환율 흐름과 헤지 비용 등을 감안해 환노출과 환헤지 상품 비중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며 “환노출 상품은 수익률이 들쭉날쭉하지만 흐름을 잘 타면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훈/김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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