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글로벌사업의 핵심역량 ‘혜초’를 아시나요

입력 2017-04-05 15:23
수정 2017-04-05 16:14

“혜초 출신이세요?”

아모레퍼시픽 직원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자연스레 나누는 인사다. 소속부서 이름과 친한 동료 이름을 공유하다가 ‘혜초’라는 단어가 나오면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저 질문에는 “능력자시군요”라는 뜻이 내포돼있다. 일종의 동경심이다. 혜초 출신끼리 만나기라도 하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느라 자리가 몇 시간씩 길어지기 십상이다. 여성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1위 화장품기업 아모레퍼시픽, 이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도 능력자로 불리는 혜초란 도대체 뭘까.

아모레퍼시픽이 2011년 시작한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시대의 승려 혜초처럼 새로운 시장에 도전해야 한다는 서 회장의 신념으로 만들어진 사내 교육제도다. 1990년대부터 배낭을 메고 미진출국가를 돌아다니며 직접 시장조사를 했던 서 회장이 본인의 경험을 되살려 만든 제도인 셈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인재라면 도전적이고 진취적,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경영철학에 따라 첫 해엔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 25명을 파견했다. 이듬해 일본, 태국, 필리핀, 브라질 등에 혜초를 보낸 아모레퍼시픽은 2014년 중동, 칠레, 터키에도 내보냈다. 2015년엔 프랑스, 인도, 호주, 스페인, 미국 등에 40여명을 파견한 데 이어 지난해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호주 멜버른, 캐나다 밴쿠버, 일본 도쿄 등에 55명을 보냈다. 올해는 멕시코와 콜롬비아, 이란 등 미진출국에 약 20여명을 파견하는 등 점점 대상국을 확대하고 있다.

혜초가 아모레퍼시픽의 핵심인재로 꼽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단 선정되기가 어렵다. 혜초가 되려면 미진출국 중 관심있는 도시에 나가기 위한 지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몇 주씩 밤을 새울 정도로 아주 꼼꼼하게 작성한다고. 인기가 많은 지역은 경쟁률이 20대1에 달한다. 어학능력이 출중하다고 꼭 뽑히는 건 아니다. 해당 국가에 대한 관심과 준비성, 적극성 등 모든 면을 검토한다. 본인이 지원하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혜초로 선정하는 일은 없다. 그만큼 자발성이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지원자 중에 선발하는 것.

혜초로 선정된 뒤에도 파견나가기 전까지 3~4개월 가량의 사전 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학 능력은 물론 해당국가의 문화를 이해하는지, 시장조사 역량이 충분한지, 빅데이터 관리 및 시장조사 방법론을 숙지했는지, 아모레퍼시픽의 글로벌 사업전략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등을 충분히 테스트하고 교육한다. 글로벌 사업 현황을 파악하고 중장기 전략에 대해 공부하는 건 기본이다. 이 자리에는 서경배 회장이 직접 참석해 혜초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눈다. 대리, 사원 등 직급에 관계없이 서 회장과 얼굴을 맞대고 편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또 아모레퍼시픽 직원이라면 늘 염두에 두고 실천해야 하는 10가지 행동원칙도 숙지해야 한다. 이른바 ‘AP Minds 10 to G1’으로 부르는 이 원칙은 혜초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중요한 행동지침이다. “나는 아모레퍼시픽의 자랑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있는가, 내일의 최고가 된다, 나는 일하고 나는 행복하다, 내가 먼저 돕는다,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나와 우리, 고객에게), 고객이 결정한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질문한다, 일은 즉시 철저히 한다, 새로움을 즐긴다.” 이 10가지 행동지침을 통해 G1(Great One), 즉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지향점을 향해 가야 한다는 경영방침을 담았다.

혜초 과정은 6~7개월. 시장조사는 물론 미용 트렌드 분석, 네트워크 구축 활동, 문화적 특성 분석 등을 마친 뒤 돌아오면 중요한 과정이 남아있다. 바로 부회장, 사장 등 임직원들 앞에서 개인별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한다. 진출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시장의 특징과 성장성, 경쟁 브랜드 등 보고 느낀 모든 것을 개별적으로 보고하는 시스템이다. 사원이나 대리급이라 할지라도 모두 1인당 PT를 마쳐야 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부회장, 사장 등 경영진 앞에서 일반 사원들이 개별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는 혜초 PT가 유일하다”며 “체류비, 활동비 등 경제적 지원도 충분히 해주는 데다 글로벌 감각을 익히면서 본인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라고 전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지금까지 진출한 나라도 모두 혜초들이 거쳐갔다. 혜초 출신 150여명의 직원 가운데 글로벌 사업 관련 부서에 배치된 사람은 약 40명. 이 중 15명은 중국, 싱가포르, 태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 해외법인에서 주재원으로 근무 중이다. 이들이 해외사업의 중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앞으로도 ‘아시아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원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 혜초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며 “회사로선 공격적으로 글로벌 사업을 할 수 있고 직원들은 개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너지가 나고 있다”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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