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가 걸어온 길
중학생 때 과학잡지 열혈독자…공대 접고 부친 뜻 따라 의대행
2011 서울시장·2012 대선 땐 박원순·문재인 후보에 양보
청춘콘서트 기획하며 '청년 멘토'
[ 전예진 기자 ]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모범생이다. 그러나 걸어온 길은 모범적이지만은 않다. 안정적인 의대 교수직을 버리고 컴퓨터 백신 개발자의 험난한 길을 택했던 그는 이제 성공한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에서 정치인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평가다.
안 후보는 1962년 2월26일 부산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부친 안영모 씨는 안 후보가 태어난 다음해인 1963년 부산 동구 범천동에서 범천의원을 열고 49년 동안 진료 활동을 했다. 안 후보는 “아버지는 빈민가에서 가난한 서민을 진료해왔다”며 “교통사고를 당한 신문 배달 소년을 돈을 받지 않고 치료해주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학창 시절 ‘공부벌레’였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안 후보는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1등을 한 것은 고3 때였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독서광이었다. 중학생 시절 ‘학생과학’ ‘라디오와 모형’ 등 과학잡지의 열혈 독자였다.
안 후보는 공과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부친의 뜻에 따라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본과 1학년 시절 학업 스트레스로 방황하기도 했다. 안 후보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컴퓨터를 처음 접한 1982년이다. 컴퓨터에 빠져든 그는 1986년 3개월간 모은 조교 월급에 빌린 돈을 보태 개인용 컴퓨터를 샀고 대학원 재학 시절 틈틈이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했다.
안 후보는 1988년 6월10일 국내 최초로 바이러스 백신 V1을 개발했다. 이후 업그레이드된 백신을 무료 배포했다. 1990년 만 27세의 나이로 최연소 단국대 의과대학 학과장에 올랐다. 7년 동안 의대 교수와 프로그래머로서 이중생활을 하던 그는 바이러스 백신 수요가 많아지자 교수에서 물러나 1995년 3월15일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고 성공한 벤처 기업가로 거듭났다.
안 후보는 2009년 미국 유학 시절 접한 강연에 착안해 청춘콘서트를 기획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각각 박원순, 문재인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출마를 포기했다. 2013년 4월 서울 노원구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4년 3월 제3지대 창당 방식으로 민주당과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 김한길 대표와 공동대표에 취임했다. 그러나 그해 7월 재보선 참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대표를 사퇴했다. 2015년 12월13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하고 2016년 1월 국민의당을 창당, 천정배 의원과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노원구병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국민의당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이 제기되자 국민의당 대표에서 물러났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