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식품산업의 소프트파워를 키워야 한다

입력 2017-04-03 17:28
"선진국에 크게 뒤지는 식품 R&D
4차 산업혁명 접목에 힘겨운 상황
기술 투자·융합 선순환체계 갖춰야"

이기원 < 서울대 교수·식품생명공학 >


한국 식품산업은 2015년 기준 매출이 100조원에 이를 정도로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식품산업은 맛과 향이라는 감각적인 즐거움,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의 행복감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분야이기도 하다. 또 세계적 기후변화의 가속화에 따라 식량생산 환경이 날로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농민들이 공들여 생산한 농산물을 안전하고 건강한 식품으로 개발해 유통함으로써 식량안보와 국민보건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식품산업의 특수성 때문에 새로운 기술과 콘텐츠가 빠르게 적용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식품산업 연구개발(R&D) 투자는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2015년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매출 대비 R&D 비중은 1.69%다. 하지만 식음료업의 경우 0.23%에 불과하다. 국가 R&D 예산에서 식품분야가 차지하는 비중도 대단히 미미하다. 이처럼 R&D 투자가 적다 보니 우리나라 식품분야 기술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식품산업에 대한 R&D 투자가 저조한 것은 식품산업을 그저 생산하고 가공하는 단순 산업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다고 본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식품분야에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이 속속 접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가상현실(VR) 기기를 이용해 가상현실에서 포크나 나이프 등 식기류로 저칼로리 음식을 섭취하고 음식의 향을 느낄 수 있는 ‘프로젝트 너리시드(project nourished)’가 시연됐다. 영국의 한 회사는 2000여 가지 요리가 가능한 셰프 로봇 시판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식품산업에서 제4차 산업혁명 대응은커녕 원천기술 확보도 요원한 실정이다.

이처럼 식품산업에 첨단기술의 융합과 소프트파워를 키우는 것은 정부뿐만 아니라 대학과 민간에서도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정부는 기술융합과 새로운 식문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식품분야 R&D 예산을 늘려야 한다. 민간부문이 이런 활동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세제와 특허제도의 혁신도 시급하다. R&D를 담당하는 기관 간 연계와 조정도 강화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식품산업 R&D 전문 국책연구기관이 미래창조과학부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는 것도 시정해야 할 것 중 하나다.

R&D를 통해 창출된 연구성과가 더욱 활발히 실용화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국내외 임상시험자료 등 과학적 근거를 요구하는 것은 산업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한편으론 새로운 건강기능성 원료를 개발하는 데 한계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다양한 국내 농산물을 활용해 기능성 식품 개발에 도전할 수 있도록 새로운 등급 신설 등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식품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상생협력과 융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소재, 가공, 서비스 등 각 분야 식품산업의 주체들이 그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력 하나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기술력으로 살아남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기술에 투자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주체들이 보유한 각각의 전문성을 발굴, 이를 창조적으로 융합함으로써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1등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 다양한 첨단기술을 보유한 대학에서 전문성 높은 기업의 기술력을 보완하고 다른 기업과 융합해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 실용화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

대내외적으로 불안정한 정치경제적인 환경 속에서 기술적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런 변화의 바람을 간과하지 말고 제도적인 보완과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한국의 식품산업과 식문화를 업그레이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기원 < 서울대 교수·식품생명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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