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드림' 출간한 문창기 이디야커피 회장
폐점률 1% 미만 이끈 질문 "네 돈이라면 가게 내겠나"
'저가커피 맛없다' 공식깨고 커피연구소에 과감한 투자
[ 김보라 기자 ]
이디야커피에는 세 가지가 없다. 로열티, 스타 모델, 갑질. 자랑할 만한 세 가지는 있다. 커피연구소, 힐링캠프, 그리고 웃음.
국내 커피전문점 최초로 점포 2000개를 돌파했고, 폐점률은 1%대다. 이런 ‘커피 신화’를 쓰고 있는 문창기 이디야커피 회장(55·사진)은 “이디야는 지금 사춘기”라고 했다. 열정과 꿈이 넘쳐난다는 얘기다. 이디야커피 창립 16년을 맞아 성장 과정과 꿈을 담은 책 《커피 드림》(한경BP)을 출간한 그는 “로스팅이 커피 생두라는 원석을 커피라는 보석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면 이디야는 부지런히 꿈을 로스팅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 책과 인터뷰를 묶어 문 회장의 스토리를 간단히 정리했다.
◆봉화 촌놈, 커피왕으로
그는 경북 봉화 산골에서 자랐다. 마흔 살 때까지 커피는 마실 줄만 알았다. 2003년 그는 작은 벤처 투자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지인이 우연히 찾아왔다. 창업한 지 3년 된 커피전문점을 인수할 사람을 구해달라고 했다. 이디야가 어떤 커피점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디야 매장을 찾았다. 그는 깜짝 놀랐다. 가맹점주들의 표정이 밝았다. 그들은 본사 직원인 양 회사 장점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은행원이었던 그는 “은행이 고객 원금을 지키듯, 이들의 투자 원금을 지켜주자. 그거면 된다”고 결심했다.
2004년 직접 이디야를 인수했다. 당시 80개였던 점포는 지금 2000여개로 늘었다. 본사도 작은 사무실에서 강남 한복판 사옥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기본에 충실한 ‘정(正)’, 가맹점주와 직원을 사랑하는 ‘애(愛)’, 모두가 즐거워야 하는 ‘락(樂)’ 등의 경영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다.
◆은행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문 회장은 은행원 시절 점포개발실, 기획조사부, 사보 기자, 경영혁신팀, 지점까지 두루 경험했다. 그는 “경영의 모든 것을 은행에서 배웠다”고 했다. 외환위기 때 은행에서 퇴사했지만 은행원 시절을 젊음·패기·성취감 등으로 기억하고 있다. 은행원 10년의 경험이 커피 사업 밑거름이 됐다. 그는 지금도 점포 개발팀 사람들과 얘기할 때 이렇게 묻는다. “당신 돈이라면 그 자리에 열겠습니까.”
그는 “프랜차이즈사업은 복잡한 숫자와 어려운 경제 용어가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걸고 내가 직접 운영할 매장을 찾는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커피 전문점의 폐업률이 10%를 넘나들 때 이디야만 1% 대에 머무르고 있다. 수익의 일정 비율을 본사가 가져가는 방식 대신 전국 어느 가맹점이든 월 25만원만 내도록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커피는 문화사업이다
그는 “이디야를 이끌며 가장 잘한 일이 뭐냐고 물으면 커피연구소를 세우고 직원들에게 투자한 것이라고 답한다”고 했다. 그는 “커피연구소는 ‘이디야의 심장’”이라며 “연구소가 있었기에 세 차례에 걸쳐 원두를 업그레이드하고, 업계 최초로 스틱원두커피 ‘비니스트25’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비니스트25’는 누적 판매량이 1억개를 넘어섰다.
문 회장은 젊은 직원들에게 투자를 많이 한다. 직원 평균 나이는 약 30세. 신입사원 연봉은 대기업 평균보다 높다. 모든 직원에게 자기계발 비용으로 1년에 120만원, 도서구입비는 매달 3만원까지 지급한다. 강원 화천군에는 글램핑 시설을 갖춘 이디야만의 ‘힐링 캠프’도 있다. 지난해 연말 선물 목록에는 사진작가가 찍어주는 ‘인생 사진’도 있었다. 30여명을 뽑는 신입사원 공채에 해마다 1만여명이 몰리는 이유다.
2009년부터는 매년 전 직원이 해외 워크숍을 간다. 올가을엔 미국시애틀로 떠난다. 그는 “개성있는 직원들을 ‘웃음’으로 블렌딩하면 창의적인 기업 문화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된다”고 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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