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득권 노사에 갇힌 노동공약 재고해야

입력 2017-04-02 17:56
"'노동 이중구조 청산' 상공회의소 제언 주목
대선주자는 기득권 노조 표만 관심
'승자의 공약저주' 현실화될까 우려"

조준모 < 성균관대 교수 한국노동경제학회장 >


전북 부안에 있는 반계 유형원의 사당으로 가는 길엔 ‘실사구시(實事求是)’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사색당쟁의 교조주의와 양반사회의 기득권을 깨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현장 중심의 정책을 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현대 노동시장에 적용하면 1차 노동시장의 대기업과 대기업 노동조합이 기득권을 버리고 국민의 후생을 극대화하는 고용정책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권은 국민의 선택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영논리만 내세운다면 조선시대 사색당쟁 때와 다를 게 없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는 인수위원회 때부터 친노조 정책을 천명했지만 집권 초기 화물연대 불법파업으로 홍역을 앓았다. 화물연대에 논의 테이블을 마련해주기는 했지만 법과 원칙으로 노동계의 파업을 규율했다. 이를 두고 강성 노동계에서는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초기에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고, 기업의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업들이 공장 해외이전에 박차를 가하면서 기업 투자의 일자리 낙수효과가 저조해 국민의 평가는 싸늘했다.

최근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2015년 9월15일까지 노동개혁을 하겠다며 노사정위원회의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새누리당은 합의 안 된 사항까지 5대 입법안으로 발표해버렸다. 작년 1월에는 2대지침(공정인사 지침(일반해고)과 취업규칙 지침(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발표하면서 노동계가 합의 파탄을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다가 강공모드로 전환한 것은 설익은 사회적 합의의 과실을 성급히 수확하려 한 조급증 때문이었다고 판단된다.

역대 정부의 노동정책은 일관성이 없었다. 진보정권은 선거 과정에서 표만을 의식해 대기업처럼 근로조건이 좋은 1차 노동시장 참여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 급급했다. 지금도 진보정권의 득세에 대비해 공공부문과 택배종사자의 파업 기미가 보인다. 반면 보수정권은 소아병적인 이데올로기에 집착해 중도보수를 진보로 매도하면서 진영논리에 갇히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노동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사회갈등만 부추긴 채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하는 형국이 돼버릴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며칠 전 대한상공회의소가 비정규직에 불이익을 주고 정규직에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을 주는 왜곡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청산하겠다는 제언을 대선주자에게 전달했다. 이는 재계가 이중구조의 원인을 노동조합에만 돌리거나 “비정규직도 나쁘지 않다”며 국민 정서와 배치된 주장을 해온 기존 입장과는 대비된다. 그 제언 속에 원·하청 문제와 관련한 공정거래 관행 확립과 법 준수 약속 등을 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경영계와 노동계가 같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노동개혁을 하자는 사회적 담론 형성에 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노동계에서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중구조를 우려하면서 1차 노동시장의 임금을 동결해 2차 노동시장을 지원하는 연대임금 프로그램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대선 국면은 이런 목소리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공약 대부분은 노동시장 구조개혁보다 1차 노동시장 기득권 집단을 위한 재분배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표심을 사기에 급급하다. 이렇게 되면 역대 정권이 경험했듯이 ‘승자정권의 공약저주’에 갇혀 집권은 하더라도 1차 노동시장 참여자들의 요구에 발목을 잡히고 2차 노동시장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은 더욱 열악해지게 된다. 이는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와 일자리 부족으로 이어져 경제와 일자리창출 부진이란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대로라면 다음 정부는 집권은 하더라도 굉장히 힘들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조준모 < 성균관대 교수 한국노동경제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