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저축성보험 비과세 축소가 놓치는 것들

입력 2017-03-29 17:31
"장기보험 조준한 비과세 혜택 축소
보험의 장기적 특성 훼손하는 조치
소비자는 손해, 보험산업 위축 우려"

김두철 < 상명대 교수·보험학 >


내달 1일부터 장기저축성 보험의 비과세 한도를 축소하는 법안이 발효된다. 한 달에 저축보험료로 150만원 이상을 낼 수 있거나, 억대의 여윳돈을 보험회사에 맡길 수 있는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세제혜택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그렇게 할 여력이 없는 대부분 사람들의 쓰린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정의로운 조처인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험의 특성을 훼손하고 보험산업을 위축시키기까지 하는 근시안적인 세법개정이다.

보험이 우리의 생활안정과 국가경제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국가적으로는 경제목표를 달성하거나 복지제도의 강화 혹은 대체를 위해 어느 나라에서나 정책적인 배려와 혜택을 줘왔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어떤 정책과 법안을 펴느냐에 따라 보험산업의 성쇠가 좌우됐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보험산업의 발전 초기에 사망보험금은 채권자가 손을 대지 못하고 유족이 온전히 수령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어냈다. 한국도 여러 가지 세제혜택과 정책적인 배려를 근간으로 보험을 통한 저축과 연금분야의 성장을 유도해 왔다. 지금에 와서 혜택 축소 등을 통해 정책 방향을 역으로 돌리는 것 자체가 소비자에게 이유 없는 거부감을 유발시킬 수 있다.

비과세 한도 축소는 궁극적으로 보험이 유일한 장기 금융수단이라는 특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보험의 장기적 특성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혜택을 가져다주느냐 하는 것은, 일부에서 보험회사의 위기론까지 들먹였던 보험료적립금의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보험회사에서 나중에 계약자에게 지급하기 위해 쌓아 둬야 하는 보험료적립금에 높은 이자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시중금리가 낮은 지금으로서는 보험사에 큰 부담이 된다.

실제 요즈음과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 연 5% 이상의 금리가 적용되는 보험료적립금 비중은 매우 높다. 보험회사에는 속 타는 일이지만 계약자 입장에서는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좋은 일이 아닌가. 가입자들은 보험만이 가지고 있는 장기적 특성의 혜택을 모두 본 것이다.

저축을 하거나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것인데, 이번에 개정된 법은 장기보험을 정조준하고 있다. 우리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좋은 금융도구를 훼손하는 것이다.

비과세 축소가 부자들이 가입하는 저축성보험에만 적용되므로 당위성이 있다는 생각은 매우 단편적이고 위험한 발상이다. 보험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진화해 새 영역으로 뻗어나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소위 ‘저축성보험’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앞으로의 저축성보험은 지금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일 확률이 높다. 사회가 고령화되고 4차 산업혁명이 세상을 바꿔 놓을 것이라고 예견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당장 지금을 기준으로 옭아매는 것은 보험을, 좁게는 저축성보험을 아주 오래전에 만든 작은 상자에 가둬 놓고 옴짝달싹 못하게 해 결국에는 모두에게 쓸모없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개정과 관련해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의도한 증세효과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저축성보험 보험료로 한 달에 150만원 이상 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원래부터 상관없는 법이다. 그러면 소위 부자들은 세금을 더 낼까. 어려운 경제이론을 들먹이지 않고 각 금융회사에서 자산관리를 도와주는 설계사 얘기만 들어봐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세금을 더 내지 않고도 재산을 불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확실한 것은 설령 증세효과가 있더라도 한참 나중에나 실현되지만, 보험산업이 위축되고 보험소비자가 손해를 입는 현상은 당장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운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김두철 < 상명대 교수·보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