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리뷰] 공각기동대, 쉘에 그친 걸작의 아우라

입력 2017-03-29 16:51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29일 개봉한 실사판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이하 '공각기동대')은 국내에서는 드라마 '상속자들'의 부제로 더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의 명대사를 연상시킨다.

루퍼트 샌더스 감독이 할리우드식 SF 범죄 액션물로 재해석한 '공각기동대'는 기존 작품의 세계를 실감나게 구현한 기술적 성취가 돋보인다. 그러나 실존과 관련해 철학적 질문을 던졌던 걸작의 아우라는 빛이 바랬다.

'공각기동대'는 일본 애니메이션 장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SF의 명작이다. 1989년 일본 작가 시로 마사무네가 출간한 만화는 1995년 오시이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후 여러 버전의 극장판과 TV애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제작됐다.

뇌를 제외한 모든 육체가 기계인 사이보그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은 실사판에서 미라 킬리언 메이저(통칭 메이저)로 바뀌어 '어벤저스' 시리즈와 '루시' 등에서 활약한 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했다.

사이버 테러 특수부대 '섹션9'을 이끄는 메이저는 첨단 사이버 기술을 보유한 '한카 로보틱스' 관계자를 피살하는 범죄조직을 쫓는다. 메이저는 추적 중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가 테러조직의 우두머리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반격에 나선다.

영화는 사이보그 육체를 얻게 된 메이저의 모습을 그린 도입부에서는 원작의 '고스트'(영혼)를 담아내겠다는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본인이 인간인지 거듭 실존적인 의문을 제기하다 잃어버린 기억과 자아를 찾아 원작과 다른 결의 선택을 내리는 메이저의 모습에서는 원작의 껍데기만 가져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할리우드 버전으로 윤색되면서 사라진 인형사의 자리를 차지한 쿠제, 모성애를 가진 오리지널 캐릭터 오우레 박사, 쿠사나기 모토코의 어머니 등의 인물들도 SF 범죄 액션물에 더해진 양념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그래픽(CG) 기술로 스크린에 펼쳐지는 '공각기동대'의 도심 풍경은 감탄을 자아낸다.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살짝 덜어낸 도심 곳곳은 원작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국어가 사용되는 풍경 속 한국 관객에게는 오역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겠다.

실사판 속 몸을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광학미채 슈트'는 까다로운 원작 팬들도 만족시킬 듯 하다. 원작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광학미채 슈트를 입은 쿠사나기 소령의 고공낙하 신(scene)과 격투신은 할리우드판에서도 백미다. 65mm 카메라로 촬영한 3D(3차원) 버전도 깊이감 있는 영상이 강점으로 작용해 비교적 자연스럽다.

캐릭터에 관계 없이 백인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화이트워싱' 논란이 있었지만 스칼렛 요한슨은 독보적인 여성 액션스타로서의 장기를 펼쳐보인다. 전신에 달라붙는 보디 슈트를 입고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낸채 펼치는 액션은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원작 속 풍경을 실사로 맛보고 싶은 관객, 스칼렛 요한슨의 보디슈트 액션이 궁금한 액션영화팬에게 권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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