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정부 믿고 돈 빌려줬는데…경영실패 책임 왜 떠안아야하나"
설득과정 없이 일방 발표도 불만
대우조선 회생에 '캐스팅보트'…업계 "결국 정부안 따르게 될 것"
[ 좌동욱 기자 ]
“정부안을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정부가 내놓은 대우조선해양 추가 지원 방안에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반응이다. “대우조선 채무조정 찬·반 영향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는 게 공식 멘트지만 속내는 다르다. 대주주인 국책은행(산업은행)과 정부(금융위원회)를 믿고 돈을 빌려줬는데 경영 실패에 대한 손실을 분담하라고 압박한다는 하소연이다. 자율적인 채무 재조정을 하겠다면서 기관투자가들과 사전 협의가 전혀 없는 절차상의 문제점도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23일 내놓은 채무재조정 방안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대주주와 회사채, 기업어음(CP)에 투자한 사채권자들이 2조9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부채를 주식으로 바꾸는 것)을 하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2조9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모든 채권자가 이런 채무 재조정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초단기 법정관리 프로그램인 프리패키지드플랜(P플랜)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국내 연기금은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에 총 67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공단 3900억원, 우정사업본부 1800억원, 사학연금공단 1000억원 등이다. 이들 연기금 중 한 곳이라도 채무재조정 방안에 반대하면 정부가 구상하는 자율구조조정 방안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회사채에 투자한 기관투자가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나온다. 국내 한 연기금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자율적인 채무재조정이라면 여러 방안과 시나리오를 제시한 뒤 투자자들을 설득해야 한다”며 “정부가 이런 과정 없이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고 말했다.
경영 부실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대주주의 손실 분담이 충분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통상적인 채무재조정 과정에서 포함되는 대주주들의 주식 감자가 포함돼 있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채무재조정의 초점이 12조원이 넘는 대주주들의 선수금 환급보증(RG) 규모를 축소하는 데 맞춰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국민연금 실무진은 정부의 ‘압박 분위기’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2015년 “해외 헤지펀드 공격을 받고 있는 국내 대기업을 도와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 결정을 내린 뒤 최순실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어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실무자들이 투자금 회수를 극대화하기보다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방안을 택하려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상당수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결국 정부의 채무재조정 방안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추가지원책이 무산되면 대우조선의 수주 취소나 선수금 반환 요구 등으로 이어져 기업 가치가 폭락할 수 있어서다. 정부는 P플랜을 추진할 경우 회사채 투자자와 같은 무담보 채권자들의 출자전환 비율이 90%를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 채무재조정 방안(50% 출자전환 후 50% 만기 상환 유예)보다 훨씬 가혹한 조건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사전 협의를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음주부터 개별 투자자 설득 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좌동욱 증권부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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