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 치렀던 경부고속도로 건설, 포항제철 설립, 한·미 FTA 체결…
"감기약 5만원·맹장수술 1천만원"
한·미 FTA 저지 운동 선동 구호
발효 5년 대미 무역흑자 2배로 증가
과도한 주장·괴담 대부분 거짓 판명
'사고(思考)의 폐쇄성' 극복 못하면 미래 없어
[ 심성미 기자 ] 올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2012년 3월 발효된 지 5년째 되는 해다. 2006년 2월 정부가 협상 추진 계획을 발표한 이후부터 2011년 11월 국회 비준을 거쳐 협정이 발효되기까지 한국 사회는 한·미 FTA를 놓고 찬반으로 쪼개져 극심한 홍역을 치렀다.
‘99% 국민들의 것을 빼앗아 1%를 배불리는 나쁜 협정’이라는 비판에서부터 ‘미국산 소고기 수입으로 광우병이 창궐한다’ ‘맹장수술비가 1000만원까지 오른다’는 등의 괴담마저 무성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이런 과도한 주장과 괴담은 대부분 거짓으로 판명됐다.
지난 50년간 경쟁과 개방을 부정하는 ‘무조건 반대 세력’에 부딪힌 사건은 FTA뿐만이 아니다. 1960년대 말 경부고속도로부터 포항제철, 중화학단지, 고속철도(KTX), 인천공항까지 비슷한 과정을 겪은 사업은 너무나 많았다. 이번주 비타민 커버스토리(3~5면)는 지난 50년간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았던 ‘반대의 역사’를 다시 돌아본다.
1968년 착공한 경부고속도로는 시작도 하기 전에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김영삼 김대중 등 당시 야당 지도자들은 “나라가 망한다”며 반대했다. 좌파 경제학자들도 “우량 농지를 훼손한다”며 반대에 앞장섰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경부고속도로는 2년 반 만에 완공됐고 지금까지 산업화의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다. 1970년 포항제철 설립과 1973년 중화학단지 조성은 “외자에 종속되고 경제성이 없다”는 반대 논리에 부딪혔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가 뚝심 있게 밀어붙인 끝에 포철과 중화학 공단은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냈다.
1992~1993년께 착공한 고속철도(KTX)와 영종도신공항(인천공항)은 환경론자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경제 성장으로 국민 환경의식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KTX는 도롱뇽에, 인천공항은 철새에 발목이 잡혀 수조원의 사회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지금은 KTX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됐고 인천공항은 연간 5000만명이 이용하는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자리 잡았다.
반대 운동은 2000년대 반미 기류와 맞물려 대대적으로 확장됐다. 한·미 FTA 협상이 시작되자 반미·반개방·반세계화 투쟁으로 확대됐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은 반미 투쟁의 정점이었다.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되면 광우병이 창궐할 수 있다는 괴담에 놀란 시민들은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한·미 FTA로 의료 시장이 개방되면 맹장수술은 1000만원, 감기약은 5만원으로 폭등할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FTA 발효 5년이 지나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종합적으로 볼 때 한국에 이득이라는 평가다.
50년간 반대에 부딪힌 현안들은 예외 없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국책사업은 성장의 토대가 됐고 개방과 경쟁은 무역대국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가능성과 잠재력을 부정하는 사고의 폐쇄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고 비타민은 강조한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