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역(不易)과 유행(流行), 그 보수의 본질. 노정치인이 남긴 '보수의 유언'

입력 2017-03-22 10:34


(김용준 생활경제부 기자) “보수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 -에드먼드 버크-

오늘은 책 얘기를 할까 합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가 쓴 <보수의 유언>입니다. 2009년쯤 나왔습니다. 그가 1918년생이니까, 아흔에 쓴 책입니다.

처음에는 한국 정치에 필요한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하고 이 책을 잡았습니다. ‘보수의 몰락’이라고 표현해도 될만한 그런 상황.

보수는 왜 이렇게 됐고,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단순히 보수에 대한 조언만 들어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정치인은 물론 기업인들이 봐도 괜찮은 리더십에 관한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에드먼드 버크의 유산

“불역(不易)과 유행(流行)이란 말이 있다. 변하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으면서 때로는 발전과 전개(유행)를 해서 갱신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보수의 본류다.”

이 책의 핵심 문장입니다.

불역은 변할 수 없는 원칙이고, 유행은 시대에 따라 혁신을 통해 변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보수의 본질이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보수는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는 에드먼드 버크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버크는 보수주의 원조로 알려진 영국 정치인입니다. 나카소네는 버크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18세기 버크는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의 뜻은 현상을 타파하라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매우 박약했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안티테제였다. 민족이나 국가가 갖고 있는 역사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사상으로서의 보수주의를 제창했다. 역사와 문화를 중시하면서 진정한 보수로 발전시키기 위해 개혁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버크의 사상이 궁금하다면 <에드먼드 버크와 토마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이라는 책을 참고할만 합니다.

결론적으로 나카소네는 일본 자민당이 혁신을 하지 않아 2000년대말 정권을 민주당에 넘겨줬다고 진단합니다.

◆짐콜린스를 떠올리다.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 불역과 유행”이란 문구를 보며 한권의 책과 한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우선 고전에 속하는 <큰 물고기를 잡아라>라는 책입니다. 왜 기업 생태계에서 나이키, 마이크로소프트 등 1등 브랜들이 마치 도전자처럼 움직일까 하는 점을 설명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등 브랜드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항상 더 절박하고, 빠르게 움직인다는 게 요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키기 위해 혁신한다는 면에서 보수주의와 비슷합니다.

이건희 삼성회장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1등을 하면 1등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두렵고, 1등을 하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어려운 기업이 될까 항상 두렵다.”

불역이라는 단어는 <위대한 기업의 조건>을 쓴 짐 콜린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책 앞머리에서 남극을 정복한 아문젠과 그보다 앞서 정복을 시도했지만 빙하 속에서 시체로 발견된 스콧 일행을 비교합니다. 실패한 그룹은 날이 좋으면 수십 킬로미터를 갔습니다. 나쁘면 아예 이동을 하지 않거나 몇 킬로미터만 갔습니다. 반면 아문젠은 하루에 딱 정해놓은 만큼만 이동했습니다. 날씨가 좋아도, 눈보라가 쳐도 그 원칙을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남극에 최초로 인간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철저한 조사에 기초해 마련한 원칙, 그리고 이것을 지켜내는 힘 덕분이었습니다. 짐 콜린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이 지금 성공적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당신은 늘 가장자리에 서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공에 대해 늘 의심하고 깎아서 보는(discount)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닥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두 배 더 열심히 일하고, 두 배 더 집중해야 하며, 두 배의 창의성을 갖고 일해야 합니다.”

나카소네는 보수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덧붙입니다. “혁신을 통해 변신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다”, “보수는 지키는 것과 고치는 것을 똑같이 중시한다. 수구와 다른 점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원성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20년은 보수에 대한 본질적 논의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또 하나의 명문입니다. 본질적 논의, 본질에 대한 논의.

이는 아이덴티티에 대한 질문입니다. 보수란 무엇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이 얘기는 지난번 썼기 때문에 생략합니다.
(http://plus.hankyung.com/apps/newsinside.view?aid=201701170106A&isSocialNetworkingService=yes)

나카소네는 정치인의 미션과 덕목에 대해서도 얘기합니다. 우선 미션입니다. “정치의 책임은 다음 세대를 위해 큰 세계를 여는 것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길을 여는 것이 비단 정치인만의 책임일까요? 기업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멋진 말 같아 남겨두려 합니다. 이 말은 나카소네의 논리에서는 보수주의의 정체성과 연결됩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원성을 갖고 있는 것이 보수주의다” 미래에 대한 책임을 결여하고, 과거에 얽매이는 정치의 편협함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철학과 열정, 그 최소한의 조건

이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그가 꼽은 중요한 덕목은 ‘철학과 열정’입니다. “책임있는 정치가는 정책을 말하기 전에 국민들에게 철학과 열정을 보여줘야 한다.” 큰 세계를 여는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투철한 철학, 용솟음치는 인간적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나카소네의 주장입니다. 설명이 이어집니다. “철학은 개별적인 요구를 식별하는 수단이고, 정치는 정열이요 감격이다.”

철학은 사상입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게 해주고, 포퓰리즘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일관된 사고의 틀. 기업인에게는 경영철학이겠지요. 정치는 정열이요, 감격이라는 말은 스스로 가슴벅차 일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감동받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였다지요. 스스로 감동받지 않은 물건을 소비자들에게 내놓는 것을 마치 죄악처럼 여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카소네의 낭만주의를 발견합니다. 평생 정치인이었던 그에게 정치는 열정과 감격의 결정체였습니다.

철학과 열정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 강조합니다.

“국민은 정치가에게 비전과 결단과 실행력을 요구한다. 정치에서의 결단과 실행력은 철학과 정열을 전제로 해서 움직인다.”

다른 얘기도 있지만 오늘은 여기서 줄입니다. 기회가 되면 두번째 정리를 할까 합니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 이 글에는 나카소네가 갖고 있는 다른 정치적 견해에 대한 가치평가는 담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글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선거와 리더의 조건

대통령 선거가 얼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다음 어떤 리더를 보게 될까요. 혼자 다음 대통령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생각, 미래, 감성’ 자기 완결적 사고를 할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면에서 생각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냈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인수위도 없고, 허니문 기간도 없이 출발합니다. 당장 풀어야 할 정치 경제적 현안은 과거 한국사회가 맞닥뜨려보지 못한 것들 투성이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없으면 한국사회 전체를 혼란으로 몰고 갈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카소네가 말한 철학입니다.

미래. 새로운 리더의 눈은 미래를 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몇년전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생각납니다.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혁명이 이어지던 시절, 이코노미스트가 재밌는 분석을 했습니다. 전국민의 평균연령과 그 나라 국가지도자의 나이를 비교했지요. 평균연령과 지도층의 나이차이가 많이 날 수록 혁명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기사였습니다. 미래보다 과거에 성공한 방식을 중시했던 영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구요? 그런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카소네의 말을 다시 떠올립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원성.”

마지막 감성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세상은 한 사람의 리더십으로 헤쳐나가기에는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처한 상황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 입니다. 어떤 리더도 혼자 할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인재들을 껴안고, 그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을 줄 알고, 정책을 만들어 국민들과 대화해 설득할 수 있는 그런 리더십. 이를 감성이라는 말로 바꿔봤습니다. 나카소네식 단어로 치면 열정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소통이라는 말이 너무 식상해서, 소통의 기본은 정서를 교환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 단어를 불러내 봤습니다.
(끝)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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